3조2000억원 규모의 사기 대출을 받고 지난달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던 모뉴엘에 대해 법원이 내렸던 ‘포괄적 금지명령’이 취소됐다. 법원이 모뉴엘의 회생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채권자들에게 강제집행을 허용한 것이다. 사실상 청산 수순에 돌입했다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수원지법 파산2부는 최근 모뉴엘에 내린 포괄적 금지명령을 해제했다고 19일 밝혔다. 모뉴엘은 지난달 20일 은행에 갚아야 할 수출환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돌연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법원은 보통 법정관리 개시 여부를 결정하기 전까지 채권·채무 보전처분과 함께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린다. 포괄적 금지명령은 채권자들의 강제집행 등을 막아 기업이 채권자들로부터 영업 활동을 방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내리는 것이다.

재판부는 지난달 30일 경기 안양시 만안구 모뉴엘 공장을 방문하는 등 이 회사의 재정 상황에 대한 현장검증 등을 거쳐 포괄적 금지명령을 해제하기로 결정했다. 법원이 법정관리 개시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포괄적 금지명령을 해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법원 관계자는 “모뉴엘은 현재 영업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고 판단해 명령을 해제했다”고 밝혔다.

법원이 포괄적 금지명령을 해제함에 따라 채권자들은 강제집행 등을 할 수 있게 된다. 한 채권은행 관계자는 “포괄적 금지명령이 취소됨에 따라 모뉴엘 및 박홍석 모뉴엘 대표의 재산 등에 대해 강제집행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법원이 채권자에 강제집행을 허용한 것은 사실상 모뉴엘의 회생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모뉴엘의 법정관리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게 금융권의 관측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지난달 27일 포괄적 금지명령과 함께 내린 보전 처분은 그대로 유지해 모뉴엘이 법원의 허가 없이 재산을 처분하거나 채무를 변제할 수 없도록 했다. 법원 관계자는 “모뉴엘이 법정관리를 받게 될지, 그렇지 않을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이번 포괄적 금지명령 해제는 이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로봇청소기와 홈시어터 PC 등으로 소형 가전업계에서 혁신업체로 주목받던 중견기업 모뉴엘은 지난해 매출이 1조2000억원, 영업이익이 11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재무 여건이 튼실한 강소기업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대부분 위장 수출이었던 점이 조사 결과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이 확인한 결과 지난 9월 말 기준 10개 은행이 모뉴엘에 제공한 여신 잔액은 총 6768억원이다.

은행과 상거래 채권자들은 법원 결정에 따라 우선적인 강제집행을 위해 로펌들에 법절차를 문의하는 등 선점경쟁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