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강행하면 재무악화로 주주 피해 우려"
"兩社 협업 지속"…재추진 가능성 남겨
이번 합병 무산은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를 비롯해 상당수 개인주주들이 합병에 반대한 게 직접적 원인이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은 합병 발표 당시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 금액이 각각 9500억원과 4100억원, 총 1조3600억원을 넘으면 합병을 취소할 수 있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지난 17일 마감된 주식매수청구는 삼성중공업 9236억원, 삼성엔지니어링 7063억원에 달했다. 계획대로 합병을 진행하려면 주주들에게 총 1조6299억원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합병으로 재무구조가 개선되기는커녕 더 악화될 판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해 1조원 넘는 영업적자를 냈고 삼성중공업도 올해 3분기까지 영업이익이 800억원대에 그쳐 막대한 주식매수청구대금을 지급할 만큼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았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이 19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합병 무효를 선언한 이유다. ‘한국판 테크닙’의 꿈도 당분간 접을 수밖에 없게 됐다.
○사업구조 재편 첫 차질
합병이 무산되면서 ‘이재용 체제’ 강화를 위한 삼성의 사업·지배구조 개편에도 처음으로 제동이 걸렸다. 삼성은 지난해부터 계열사 간 인수합병(M&A)과 삼성SDS 상장 등을 통해 후계구도를 강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도 사업구조가 비슷한 회사 간 시너지 효과 창출이란 측면 외에 이 부회장의 후계구도 짜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다. 통합 삼성중공업은 이 부회장이 직할하는 삼성전자가 최대주주(지분 12.5%), 삼성전자 자회사인 삼성SDI가 2대주주(지분 4.2%)가 된다는 점에서다. ‘이재용 부회장→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의 기본적인 지배구조 속에서 삼성전자가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테크윈 등 전자 계열사 외에 통합 삼성중공업까지 거느리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불발은 후속 사업구조 재편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증권가에선 이번 합병이 성공했다면 다음 사업구조 재편 차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건설부문 등 그룹 내 건설사업이 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강성부 신한금융투자 채권분석팀장은 “이번 합병이 성사됐다면 합병 회사가 장기적으로 삼성물산 및 제일모직 건설부문을 흡수하는 것도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합병 재추진 가능성
재계의 관심은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이 재추진될지 여부에 쏠리고 있다. 두 회사는 일단 “협업을 지속하면서 시장 상황과 주주 의견 등을 신중히 고려해 합병을 재추진할지 검토하겠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삼성 관계자는 “합병을 추진하다 불발될 경우 일정 기간 다시 합병을 못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설명했다.
증권가의 전망은 엇갈린다. 박중선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합병은 계열사를 단순화하고 유사한 기업을 묶으려는 일환으로 추진됐다”며 “다시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선업·플랜트업 불황으로 합병에 대해 예상보다 시장 반응이 싸늘했다”며 당분간 합병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이날 삼성중공업 주가는 전날보다 6.39%, 삼성엔지니어링 주가는 9.31% 떨어졌다.
주용석/임도원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