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파괴가 아니라 건설이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매일 같은 옷을 입는다. 옷 고를 시간도 없이 바빠서다. 알리바바 회장 마윈은 매년 창립 기념 행사에 자기가 좋아하는 유명인사를 초청해 대담한다. 무협배우 리롄제(李杰)도 불렀고 미국 NBA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도 초대했다. MS 창업자 빌 게이츠는 해마다 1주일씩 ‘생각주간(think week)’을 가진다. 스마트폰 등을 다 끄고 별장에서 사색만 한다. 우리 청년들도 이렇게 멋지게 살 수 없을까. 취업난에 찌들고 학자금 융자 갚을 길이 걱정이겠지만 그들 중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세계적인 사업가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기업가 정신은 기회를 잡는 것

문제는 우리나라가 이런 사업가가 나올 만한 토양인가 하는 점이다. 청년이건 회사원이건 자본주의 자체에 별 생각이 없다. 그러니 그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기업가 정신에 대해선 더욱 깜깜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사업한다는 것을 너무 힘들고 위험하고 어려운 것으로 생각해왔고, 그런 대단한 과제를 수행하는 것을 기업가 정신의 핵심으로 봤다. 그런 인식 아래에서 누가 창업을 꿈꾸겠는가.

기업가 정신을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으로 본 위대한 경제학자 두 명을 꼽으라면 단연 조지프 슘페터와 이스라엘 커즈너다. 이 가운데 우리 정책 당국자나 학자들이 자주 인용한 것은 슘페터다.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를 주장했다. 기업가의 혁신 행위로 사회에 균형이 깨지고 불균형이 초래될 때 사회가 발전한다고 본다. 그에게 기업가 정신이란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혁신을 이루려는 의지와 노력이다. 파괴, 그것도 창조적 파괴라면 너무 거창하고 어렵게만 보인다.

이에 비해 커즈너의 기업가 정신이야말로 창의적 조직, 창조적 국가를 만드는 데 기초가 될 만한 개념이다. 슘페터가 창조적 파괴라면 커즈너는 ‘창조적 건설’이다. 커즈너는 사회적 불균형이 발생했을 때 그 속에서 기회를 찾아내는 능력이 기업가 정신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창업자의 기민성이 성공 좌우

기업가에게 필요한 덕목은 의지나 도전정신, 끈기 등이 아니라 오히려 기민성(alertness)이다.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 잡아챌 수 있도록 전투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눈을 반짝이며, 귀를 열고, 이제까지의 상식과 네트워크를 총동원하며, 최종적으로는 ‘내가 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결단력이 바로 기업가에게 필요한 덕목이라는 얘기다.

한국에서 사업가는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이란 자조가 많았다. 패가망신의 길이고 사업하는 친척 보증은 안 서는 것도 불문율이었다. 이 모두가 기업가를 파괴적 혁신가, 즉 기존 질서를 깨고 뭔가 새로운 것을 내놓는 사람, 그래서 실패할 가능성이 너무 높은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커즈너의 시각으로 보면 기업가가 되는 데 거창한 준비는 필요 없다.

물론 기회를 잡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기회의 신’ 카이로스는 앞머리만 더부룩하고 뒷머리는 대머리다. 앞에서 보일 때 잡아야지 지나치면 못 잡는다는 뜻이다. 그만큼 정신 바짝 차리고 눈을 부릅뜨고 머리를 짜내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결코 어렵거나 위험한 일은 아니다. 기업가가 되는 길이 이렇게 쉬워야 회사든 나라든 희망이 있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