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창조과학부가 13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연 ‘국가R&D 혁신 대토론회’에서 최양희 미래부 장관(왼쪽 세 번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미래창조과학부가 13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연 ‘국가R&D 혁신 대토론회’에서 최양희 미래부 장관(왼쪽 세 번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2001년 화장품 제조업체 한국콜마는 신사업 개발을 위해 도움이 될 만한 기술을 찾고 있었다. 업계 사람들을 수소문하고 특허청에도 문의했다. 그러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녹차 추출물의 색소를 제거해 하얗게 바꾸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를 이용하면 미백효과가 뛰어난 화장품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한 한국콜마는 원자력연에 도움을 요청했다. 원자력연은 단순 기술 이전이 아닌 합작회사 설립을 제안했다. 2004년 원자력연이 기술을 출자하고 한국콜마는 현금을 출자하는 방식으로 자본금 10억원의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국내 최초로 코스닥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한 연구소기업 콜마비앤에이치의 얘기다.

최근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성과가 대부분 산업 현장에서 쓸모없는 ‘장롱기술’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기업 수요에 기반을 둔 연구개발(R&D)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콜마비앤에이치의 사례는 기업과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연구 결과가 효과적으로 연결된다면 얼마든지 사업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 수요 기반 연구 필요

미생물사료 제조업체 비오투는 음식물 쓰레기를 재활용하기 위해 수년간 잔반 자원화 시스템 개발에 공을 들였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 건설기술연구원의 ‘중소기업 현장애로 기술지원사업’을 신청해 시스템 설계 최적화, 시제품 제작 등에 성공했다. 라종덕 비오투 대표는 “건설연과 공동 개발한 시스템으로 남은 음식물을 고품질 사료와 퇴비로 자원화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연구과제 선정에서부터 기업의 수요를 고려해 성과를 본 예다.

공동연구 방식도 사업화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방청제품 제작 전문업체인 녹스탑은 한국화학연구원의 도움으로 신제품인 어망용 방오코팅제를 개발했다. 화학연 내에 기업부설연구소를 설치하며 용지는 물론 장비, 인력까지 지원받았다. 출연연 내에 기업부설연구소를 유치하는 것은 연구기관과 기업을 잇는 융합 생태계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설립 3년차 스타트업인 아이포트폴리오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도움으로 영국 옥스퍼드대에 전자책 플랫폼을 수출하는 계약을 성사시켰다. 김성윤 아이포트폴리오 대표는 “옥스퍼드대가 처음에는 스타트업과 계약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지만 두 차례 한국 실사에서 ETRI 연구원들이 직접 기술을 지원하는 모습을 본 뒤 계약을 결정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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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상당수 민간에 맡겨야

사업화 성과 사례의 상당수는 R&D 기획단계부터 기업 수요를 감안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13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개최한 ‘국가 R&D 혁신 대토론회’에서도 민간 중심으로 국가 R&D 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는 제안이 쏟아졌다. 이우일 서울대 부총장은 “정부가 매년 기술 로드맵을 발표하면 연구자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놔두고 그 밑으로 모이는 부작용이 반복되고 있다”며 “공공기술을 제외하고 대다수 과제를 민간에 맡기는 등 정부가 R&D를 끌고 나가는 게 아니라 밀어주는 방식으로 역할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경학 한국연구재단 융합기술단장은 “각 부처가 제각각 R&D 과제를 내놓다 보니 기초 분야에서 나온 좋은 성과가 원천, 응용 연구로 이어지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진단했다.

박희재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장은 “대학, 출연연이 시장에서 통할 핵심 기술과 강소기업을 키우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며 “연구회인 프라운호퍼가 연구비의 30% 이상을 기업의 과제를 수주해 조달하고 정부는 이에 비례해 예산을 지원하는 독일식 모델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래부는 이날 제안된 의견을 모아 올해 말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가 R&D 혁신전략을 보고할 예정이다.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국가 R&D 사업화 실적이 투자 규모에 비해 부족한데 언제까지 국민에게 기다려달라고 할 수 없다”며 “지금이 R&D 혁신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하고 기획, 집행, 평가, 사업화 등 R&D 전 주기에 걸쳐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종/김태훈 기자 dda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