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 알고 준비했을 수도
위안부·북핵 등 두루 논의
박 대통령이 만찬장에 마련된 자리에 아베 총리와 나란히 앉아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장면은 중국 CCTV를 통해 방영됐다. 청와대 역시 밤 늦게 브리핑을 통해 “두 정상이 다양한 현안을 논의했고, 국장급 협의가 잘 진전되도록 독려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구체적인 대화 내용에 대해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과 아베 총리밖에 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대화 시간도 확인해주지 않았다.
당시 회담장에 있던 관계자들과 일본 언론에 따르면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만찬이 진행되는 1시간가량 내내 대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예정에 없던 비공식 대화지만 공식 회담 못지않게 다양한 주제를 놓고 여러 의견 교환이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날 만찬장 좌석이 국가 영문이름 알파벳 순서로 배치돼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옆자리에 앉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점 등에서 두 정상이 나눌 대화를 준비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정상회담의 의미가 없다고 일관되게 강조해온 박 대통령이나, 일본 내 반한(反韓) 여론 등을 감안해 한·일 정상회담 요구를 자제해온 아베 총리 모두 이번 APEC 회의 기간에 공식 회담을 여는 것은 부담이었을 것”이라며 “이런 부담을 피해 만찬장에서 자연스러운 만남을 통해 비공식 대화를 나누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두 정상은 경색 국면이 장기화하는 한·일 관계 개선 문제뿐 아니라 북한 핵무기와 일본인 납치자 문제 등 북한 관련 문제, 세계적인 경기 침체 등 공통의 관심 사안을 두루 논의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 아베 총리가 상당히 전향적인 발언을 했을 것이라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두 정상 간 대화가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일각에서 제기한 ‘고립 외교’를 불식하기 위한 의도도 내포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APEC 회의 기간에 중국과 일본이 2년 반 만에 정상회담을 했고, 북한 내 억류 미국인 석방을 계기로 북·미 간 직접 대화 가능성 등이 높아지면서 자칫 한국이 동북아 외교 무대에서 고립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 상황에서 한·일 정상 간 전격 대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베이징=정종태/전예진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