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역사로 살펴본 '이자율'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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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증권부 기자) 미국 중앙은행(Fed)이 6년간 지속했던 양적완화(QE)정책을 종료했습니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Fed가 언제 금리를 인상해 ‘정상화’에 들어가느냐로 쏠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비록 예견된 수순이지만 국내 금융·자본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여겨집니다.
최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인하를 결정, 초저금리 시대에 살고 있는 상황에서는 금리인상·인하 영향 탓에 울고 웃는 사태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초저금리 시대’와 ‘가시화되는 글로벌 금리인상 시대’를 맞아 이자가 무언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경제사를 긴 시각에서 보면 이자율(금리)는 계속 낮아졌습니다. 사회가 발전되고 안정되면서 돈 떼일 위험이 줄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요. 기본적으로 농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회에선 한계생산성이 크게 늘어나지 못한다는 점도 높은 이자율을 내린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와 관련, 독일의 경제사가 빌헬름 로셔는 "문명화의 진전에 따라 이자율은 낮아진다”고 단언하기도 했습니다. 사회안정과 시장효용의 증대, 신용의 발달에 따라 대부의 위험도가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고대사회에선 이자라는 단어가 '고리대금'이란 뜻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됐는데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이자의 뜻도 나뉘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자와 관련해서 서양 사회에선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 로마가 각자 관련 규칙들을 마련해 왔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수메르와 그리스, 로마는 서양사에서 이자율 개념을 독자적으로 개발해왔던 지역으로 꼽힙니다. 처음에는 수익(profit)이나 생산성(productivity rates)에 맞춰 이자율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수학적’으로 이자율이 정해졌습니다.
다시 말해 이자율이 경제논리가 아니라 권력자 혹은 대부자와 피대부자와의 관계에 따라 결정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자율 계산이 복잡해서도 곤란했기에 10진법, 12진법, 60진법 등 각 진법상 계산하기 편한 형태로 이자가 매겨졌습니다. 이에 따라 이자율 최소단위는 메소포타미아에선 60분의1, 그리스에선 10분의1, 로마에선 12분의1로 정해졌습니다.
당시 가장 큰 재산이 가축이었다는 데서 이자는 가축이 새끼를 낳는 것에 준해서 이해되고 평가됐습니다. 수메르어의 ‘마스(máš)’와 라틴어의 ‘파이누스(fænus)’ 는 이자란 뜻과 새끼, 어린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당시부터 이자를 뜻하는 그리스어 ‘토코스(τόκος)’는 이자란 단어와 함께 짐승의 새끼, 어린아이도 의미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홀수는 남성의 수, 짝수는 여성의 수로 보고 홀수와 짝수가 합쳐져서 새끼(다음 홀수)가 나온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고대사회에서도 시대가 갈수록 이자율은 전반적으로 떨어졌습니다. 평균 이자율은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고대 바빌로니아의 연평균 이자율은 33과3분의1%이었지만 후기로 가면 은의 대부에 적정이율은 연 20%가 됩니다. 그보다 후대인 고대 그리스는 연 10%, 로마는 8과3분의1%로 떨어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물론 정치적 안정 여부에 따라 평균 이자율은 요동을 쳤습니다. 동로마제국(비잔티움)의 경우엔 유스티니아누스대제 이전에는 평균이자율이 연 12%, 유스티니아누스대제 이후엔 연 5%+알파 정도였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엔 연 8과3분의1% 이상으로 다시 뜁니다.
서양에선 중세시대로 가면서 원칙적으로 이자수취가 금지됩니다. 신이 인간에게 정직하게 일하면서 일용할 양식을 벌라고 한 명령을 어기고, 신의 영역인 시간을 가지고 장난치면서 노력도 하지 않고 부자가 되는 것으로 봤기 때문이었습니다. 간음이나 난봉, 살인, 거짓증언, 불경 등의 큰 죄를 지은 사람도 자신의 죄가 신물이 나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지만 고리대금업자의 이익은 고리대 사업자가 자거나 깨 있거나 상관없이 쉼 없이 축적된다는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관련 법률을 어겨가며 각종 대부가 등장해 활성화된 것도 사실입니다. 교황청은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Mutuum date, nihil inde sperantes)”라는 누가복음 구절이나 “자본 이상으로 요구되는 것은 다 고리대금(Quicquid ultra sortem exigitur usura est)”, “돈은 새끼를 만들지 않는다(nummus non parit nummos)” 등의 문구를 앞세워 이자에 대한 이념 공세를 멈추지 않았지만 ‘관행’을 근절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고리대금 금지법으로 이자수취가 금지된 상황에서 대부업의 목적은 일부 장원에 대한 명목지대, 특정세금에 대한 면제, 교회 공직에 대한 후보 지명권, 유리한 환율로 모직물을 수출할 수 있는 허가권 등의 특권을 얻기 위한 형태로 활용됐습니다.
이자를 없앨 수 없게 되자 이자 개념을 정당화하는 작업도 진행됐습니다. 당시의 교회법 학자들은 이자와 관련된 로마법 판례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달력을 의미하는 ‘캘린더(calendar)’라는 단어가 로마시대에 원금을 다 갚고 이자지불이 만기되는 달의 첫날을 의미하는 ‘칼렌다이(kalendae)'에서 나왔고, 라틴어 ‘칼렌다리움(calendarium)'이 ‘달력’이라는 뜻보다는 ‘회계장부’를 의미했을 정도로 로마시대에는 이자를 다룬 선례가 풍부했습니다다.
그러다가 로마법의 문서 더미 한 구석에서 발견한 것이 “채권자가 돌려받지 못한 돈에 대해 위약금을 부과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판례였습니다. 이 같은 판결에서 등장하는 원금과 원금에 위약금을 더한 금액의 차액은 ‘사이에 있는 것’이라는 뜻의 ‘쿠오드 인테르 에스트(quod inter est)’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교회법 학자인 볼로냐의 아초(ca.1150~1230)가 제일 먼저 이 말을 줄여서 ‘interest’라고 불렀고(쿠오드 인테르 에스트 중 ‘인테르 에스트’가 줄어서 오늘날 영어에서 이자를 뜻하는 ‘interest’가 됐다.), 실제적인 또는 가상적인 상환 의무 불이행에 대한 보상으로 재개념화 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한편 비슷한 시기인 한국의 이자율은 어땠을까요? 고려시대 법정이자율은 쌀 15두에 5두, 포(布) 15척에 5척 식으로 연 33% 정도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자율만 놓고 보자면 서양 사회에 비해 엄청난 ‘고리대’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제로금리’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선 먼 옛날의 높은 이자율은 막연하지만 ‘아찔한’ 느낌을 들게 합니다. 당장 이자율이 연 0.25% 포인트만 올라도 세상이 난리가 나겠죠. 이자율이 낮아졌다고 고민이 줄어드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문명화의 혜택을 감사해야 하는 것인지, 이자율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인생이란 각박하고 힘든 것인지 묘한 생각이 듭니다. (끝)
최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인하를 결정, 초저금리 시대에 살고 있는 상황에서는 금리인상·인하 영향 탓에 울고 웃는 사태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초저금리 시대’와 ‘가시화되는 글로벌 금리인상 시대’를 맞아 이자가 무언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경제사를 긴 시각에서 보면 이자율(금리)는 계속 낮아졌습니다. 사회가 발전되고 안정되면서 돈 떼일 위험이 줄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요. 기본적으로 농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회에선 한계생산성이 크게 늘어나지 못한다는 점도 높은 이자율을 내린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와 관련, 독일의 경제사가 빌헬름 로셔는 "문명화의 진전에 따라 이자율은 낮아진다”고 단언하기도 했습니다. 사회안정과 시장효용의 증대, 신용의 발달에 따라 대부의 위험도가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고대사회에선 이자라는 단어가 '고리대금'이란 뜻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됐는데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이자의 뜻도 나뉘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자와 관련해서 서양 사회에선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 로마가 각자 관련 규칙들을 마련해 왔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수메르와 그리스, 로마는 서양사에서 이자율 개념을 독자적으로 개발해왔던 지역으로 꼽힙니다. 처음에는 수익(profit)이나 생산성(productivity rates)에 맞춰 이자율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수학적’으로 이자율이 정해졌습니다.
다시 말해 이자율이 경제논리가 아니라 권력자 혹은 대부자와 피대부자와의 관계에 따라 결정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자율 계산이 복잡해서도 곤란했기에 10진법, 12진법, 60진법 등 각 진법상 계산하기 편한 형태로 이자가 매겨졌습니다. 이에 따라 이자율 최소단위는 메소포타미아에선 60분의1, 그리스에선 10분의1, 로마에선 12분의1로 정해졌습니다.
당시 가장 큰 재산이 가축이었다는 데서 이자는 가축이 새끼를 낳는 것에 준해서 이해되고 평가됐습니다. 수메르어의 ‘마스(máš)’와 라틴어의 ‘파이누스(fænus)’ 는 이자란 뜻과 새끼, 어린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당시부터 이자를 뜻하는 그리스어 ‘토코스(τόκος)’는 이자란 단어와 함께 짐승의 새끼, 어린아이도 의미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홀수는 남성의 수, 짝수는 여성의 수로 보고 홀수와 짝수가 합쳐져서 새끼(다음 홀수)가 나온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고대사회에서도 시대가 갈수록 이자율은 전반적으로 떨어졌습니다. 평균 이자율은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고대 바빌로니아의 연평균 이자율은 33과3분의1%이었지만 후기로 가면 은의 대부에 적정이율은 연 20%가 됩니다. 그보다 후대인 고대 그리스는 연 10%, 로마는 8과3분의1%로 떨어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물론 정치적 안정 여부에 따라 평균 이자율은 요동을 쳤습니다. 동로마제국(비잔티움)의 경우엔 유스티니아누스대제 이전에는 평균이자율이 연 12%, 유스티니아누스대제 이후엔 연 5%+알파 정도였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엔 연 8과3분의1% 이상으로 다시 뜁니다.
서양에선 중세시대로 가면서 원칙적으로 이자수취가 금지됩니다. 신이 인간에게 정직하게 일하면서 일용할 양식을 벌라고 한 명령을 어기고, 신의 영역인 시간을 가지고 장난치면서 노력도 하지 않고 부자가 되는 것으로 봤기 때문이었습니다. 간음이나 난봉, 살인, 거짓증언, 불경 등의 큰 죄를 지은 사람도 자신의 죄가 신물이 나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지만 고리대금업자의 이익은 고리대 사업자가 자거나 깨 있거나 상관없이 쉼 없이 축적된다는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관련 법률을 어겨가며 각종 대부가 등장해 활성화된 것도 사실입니다. 교황청은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Mutuum date, nihil inde sperantes)”라는 누가복음 구절이나 “자본 이상으로 요구되는 것은 다 고리대금(Quicquid ultra sortem exigitur usura est)”, “돈은 새끼를 만들지 않는다(nummus non parit nummos)” 등의 문구를 앞세워 이자에 대한 이념 공세를 멈추지 않았지만 ‘관행’을 근절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고리대금 금지법으로 이자수취가 금지된 상황에서 대부업의 목적은 일부 장원에 대한 명목지대, 특정세금에 대한 면제, 교회 공직에 대한 후보 지명권, 유리한 환율로 모직물을 수출할 수 있는 허가권 등의 특권을 얻기 위한 형태로 활용됐습니다.
이자를 없앨 수 없게 되자 이자 개념을 정당화하는 작업도 진행됐습니다. 당시의 교회법 학자들은 이자와 관련된 로마법 판례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달력을 의미하는 ‘캘린더(calendar)’라는 단어가 로마시대에 원금을 다 갚고 이자지불이 만기되는 달의 첫날을 의미하는 ‘칼렌다이(kalendae)'에서 나왔고, 라틴어 ‘칼렌다리움(calendarium)'이 ‘달력’이라는 뜻보다는 ‘회계장부’를 의미했을 정도로 로마시대에는 이자를 다룬 선례가 풍부했습니다다.
그러다가 로마법의 문서 더미 한 구석에서 발견한 것이 “채권자가 돌려받지 못한 돈에 대해 위약금을 부과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판례였습니다. 이 같은 판결에서 등장하는 원금과 원금에 위약금을 더한 금액의 차액은 ‘사이에 있는 것’이라는 뜻의 ‘쿠오드 인테르 에스트(quod inter est)’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교회법 학자인 볼로냐의 아초(ca.1150~1230)가 제일 먼저 이 말을 줄여서 ‘interest’라고 불렀고(쿠오드 인테르 에스트 중 ‘인테르 에스트’가 줄어서 오늘날 영어에서 이자를 뜻하는 ‘interest’가 됐다.), 실제적인 또는 가상적인 상환 의무 불이행에 대한 보상으로 재개념화 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한편 비슷한 시기인 한국의 이자율은 어땠을까요? 고려시대 법정이자율은 쌀 15두에 5두, 포(布) 15척에 5척 식으로 연 33% 정도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자율만 놓고 보자면 서양 사회에 비해 엄청난 ‘고리대’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제로금리’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선 먼 옛날의 높은 이자율은 막연하지만 ‘아찔한’ 느낌을 들게 합니다. 당장 이자율이 연 0.25% 포인트만 올라도 세상이 난리가 나겠죠. 이자율이 낮아졌다고 고민이 줄어드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문명화의 혜택을 감사해야 하는 것인지, 이자율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인생이란 각박하고 힘든 것인지 묘한 생각이 듭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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