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29일 내년도 정부 예산안과 국정 기조를 설명하는 37분간의 국회 시정연설을 모두 경제 분야로 채웠다. 지난해 연설 절반을 대북 문제와 정치 현안에 할애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만큼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과 의지가 강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연설 마지막 10분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자본시장법, 주택시장 정상화 관련 법 등을 국회가 통과시켜야 할 1순위 법안으로 열거하며 처리를 촉구했다.

◆‘세모녀법’ 1순위 처리 촉구

박 대통령은 ‘세모녀법’으로 불리는 기초생활보장법을 맨 먼저 언급했다. 이 법 개정안은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일괄적으로 대상자를 선정하는 기존 법을 바꿔 맞춤형 개별 급여체계로 전환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수급의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이 새로 혜택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당초 시행 시기로 정한 올해 10월이 다 지나가지만, 1년 반 넘도록 국회에서 처리가 안돼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 야당이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등을 요구하며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 법 처리가 지연되면서 13만명의 신규 기초 생보자를 위한 2300억원의 예산을 확보하고도 한푼도 쓰지 못하고 있다. 당사자분들에게는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겠느냐”며 빠른 처리를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또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가들의 자금조달을 돕는 크라우드 펀딩 제도가 외국에서는 허용되는데 우리는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관련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 통과도 당부했다. 크라우드 펀딩 제도는 창업 기업이 별도 담보 없이도 다수의 소액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지만, 야당은 개인 투자자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며 반대하고 있다.

◆“서민 주거비 낮추는 법안도…”

박 대통령은 주택시장 정상화 법안 처리도 강하게 요구했다. 이들 법에 대해 “과거 주택가격 급등기에 도입된 제도를 현 시점에 맞게 합리적으로 개선해 장기적으로 주택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임차인의 월세를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대표적으로 거론했다. 월세 세입자의 생계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월세에 관한 세 혜택을 늘리자는 내용으로, 야당의 반대가 없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묶여 있다.

국회에서는 조특법 개정안 말고도 2000만원 이하 임대소득에 3년간 비과세 혜택을 주는 소득세법 개정안, 주택 분양가 상한제 폐지를 담은 주택법 개정안 등 5개의 주택시장 정상화 법안이 계류돼 있다.

◆“서비스산업법도 개정돼야”

박 대통령은 “서비스산업을 일으키지 않고서는 일자리를 만들 수 없으며 우리에게 중요한 당면과제인 청년실업을 해결할 길도 없다”며 서비스산업 육성을 위한 관련 법 처리도 요청했다.

박 대통령은 “낙후된 서비스업을 고부가가치 유망 산업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R&D(연구개발) 인력 양성 등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2년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처리를 촉구했다. 이 법은 서비스산업 투자를 촉진하고 지원체계 마련과 관련한 기본 시행계획을 담은 것이지만, 야당은 의료영리화를 촉진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내국인에게는 허용하는 의료광고를 외국인에게는 허용하지 않는 불합리한 규정도 한시바삐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공항 등 외국 관광객이 이용하는 장소에는 외국어로 표기한 의료 광고를 허용하자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언급한 것이다. 이 개정안 외에도 국회에는 서비스산업 육성과 관련된 법률 제·개정안 12개가 관련 상임위원회에 묶여 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