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첫 여성 대통령인 지우마 호세프 노동자당(PT) 후보가 재선에 성공했다. 브라질 국민은 성장률 하락과 물가 상승 등 불안한 경제 상황에서도 12년간 강력한 사회보장 정책을 펼쳐온 노동자당을 또다시 선택했다. 호세프 대통령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이 2002년 대통령 결선 투표에서 사용했던 ‘희망은 두려움을 이긴다’는 문구를 본뜬 ‘희망은 증오를 이긴다’는 슬로건으로 중산층 지지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新중산층 지지가 승리 요인

브라질 선거관리위원회는 26일(현지시간) 대선 결선투표 최종 집계 결과 호세프 대통령이 득표율 51.6%로 승리했다고 발표했다. 상대 후보인 중도우파 브라질사회민주당(PSDB)의 아에시우 네베스 후보(48.4% 득표)를 3.2%포인트 차로 눌렀다. 두 후보의 표 차이는 300만표에 불과했다. 외신은 “브라질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선거”라고 전했다. 호세프 대통령은 브라질 사상 연임에 성공한 세 번째 대통령이 됐다. 그의 재선 성공으로 노동자당은 2003년 룰라 전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부터 2018년까지 16년간 정권을 유지하게 됐다.

전문가들은 룰라 전 대통령의 강력한 빈곤층 지원 프로그램과 일자리 창출 노력 덕분에 저소득층에서 탈출한 중산층이 ‘룰라의 후계자’인 호세프를 선택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신(新)중산층은 전체 유권자의 35%에 달한다.

2001년 노동자당에 입당해 룰라와 인연을 맺은 호세프 대통령은 2003년 1월 룰라 정부 출범과 함께 에너지부 장관에 임명됐다. 2005년 6월에는 수석 장관인 정무장관에 기용돼 5년 가까이 재직했다.

룰라 전 대통령은 집권 말기인 2010년 지지도가 87%에 달할 정도로 브라질 국민에게 인기가 높았다.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3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고 있던 브라질은 룰라 재임 기간 사회간접자본 시설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에너지 개발 확대 등으로 연평균 4.1%의 경제성장을 지속했다. 룰라 전 대통령의 빈곤 퇴치 프로그램은 2900만명을 ‘먹는 고민’에서 벗어나게 했고, 3000만명의 중산층을 만들어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네베스 후보가 친기업 정책을 앞세워 침체에 빠진 브라질 경제를 회복시키겠다고 공언했지만 사회복지 혜택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중산층 이하 국민은 호세프의 친서민 정책에 손을 들어줬다”고 분석했다.

◆경제 회복이 최대 과제

재선에는 성공했지만 호세프 대통령의 앞길은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일단 근소한 차로 승리한 만큼 분열된 민심을 통합해야 한다.

시장의 불신도 넘어야 할 산이다. 호세프 대통령의 재선 소식에 일본 도쿄거래소에서 브라질 주가지수에 연동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7.9% 떨어지는 등 불안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양적 완화 축소 등의 영향으로 휘청거리는 브라질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도 과제다. 브라질 경제는 올 1분기와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했다. IMF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와 내년 브라질 성장률을 각각 0.3%와 1.4%로 전망했다. 낮은 성장률에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브라질의 국가 신용등급 강등을 경고한 상태다.

룰라 정부와 비슷한 정책 기조에도 호세프 집권 이후 브라질 경제가 급속히 악화된 것은 대외 여건이 달라진 영향이 크다. 룰라 전 대통령 때는 원자재 가격 상승이라는 우호적인 환경에다 글로벌 투자자금 유입이라는 호재까지 겹쳤다. 선진국 투자자금이 브라질에 대거 유입되면서 브라질 정부의 복지 지출은 국내 소비 활성화로 이어졌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불안해진 글로벌 자금은 브라질 시장을 빠져나갔고, 헤알화 가치 하락으로 수입물가가 오르면서 내수 침체가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호세프 대통령이 사회복지 지출 확대 등 기존 정책을 고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경제 정책에는 조정이 있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친기업 정책 등을 통해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할 것이란 얘기다. 호세프 대통령은 결선투표 직전 연설에서 불평등 완화와 소득분배 강화 등 1기 정부정책의 연속성을 강조하면서도 “재선에 성공하면 경제팀을 교체하겠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