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이탈리아·스페인 국채금리 반락…그리스 증시 7% 반등
그리스 총리 "채권단과 구제금융 이후 '예비 신용공여' 협의"
EU·ECB, 긴급 진화…26일 스트레스테스트 결과 등 주목


그리스 정부의 구제금융 조기졸업 방침과 정정불안으로 촉발된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재정위기 재발 우려가 진정 국면에 들어섰다.

그리스 국채 금리는 17일(현지시간) 오전에도 상승해 9%를 넘겼지만 오후에 급락세로 돌아섰고 이탈리아와 스페인 채권도 강세를 보여 이른바 '유로존 위기 2.0' 우려는 소강상태를 보였다.

그리스 아테네증시도 이날 7% 급등해 최근 폭락장에서 탈출했으며 유럽 주요국 증시도 일제히 반등했다.

그리스 정부는 구제금융이 끝나도 채권단과 '예비 신용공여'(precautionary credit line)를 통한 지원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고 유럽연합(EU)과 유럽중앙은행(ECB)도 그리스에 지원을 지속하겠다고 약속해 진화에 나섰다.

◇그리스 국채 사흘만에 강세…'구제금융 조기졸업·조기총선'이 악재
그리스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지난 13일 6.7%였으나 14일에 7.01%로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진 7%를 돌파한 이후 15일 7.85%, 16일 8.96% 등으로 연일 폭등했다.

국채 10년물 금리는 이날 오전장에서도 9.08%까지 올라 지난해 12월 이후 처음으로 9%에 들어섰다.

그러나 이날 오후 안토니스 사마라스 그리스 총리가 구제금융이 끝나도 채권단인 유럽연합(EU)과 예비 신용공여를 통한 지원을 논의하고 있다며 거듭 진화에 나서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마라스 총리는 또 "그리스는 추가 구제금융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이 분명하며 어떤 경우라도 개혁정책을 고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채 금리는 하락세로 돌아섰으며 전날보다 0.82%포인트 급락한 8.15%까지 내렸다.

그리스발 위기 우려로 동반 약세를 보였던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도 오후 들어 금리가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리스 주식시장은 지난 14일과 15일 각각 5.7%, 6.3% 폭락한 데 이어 전날에도 2.2% 급락했으나 이날 7%대의 상승률로 반등했으며, 유럽 주요 증시들도 2% 안팎의 상승률로 위기에서 탈출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그리스 금융시장 폭락세는 정부가 공언한 대로 구제금융을 조기에 졸업하면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과 내년 2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출에 실패해 조기총선을 치르면 구제금융에 반대하는 야당이 집권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리스는 지난 4월 4년 만에 국채(만기 5년)를 발행할 당시에는 구제금융 졸업과 경제가 성장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투자자들이 대거 몰려 발행금리가 4.75%로 결정됐지만 반년 만에 투자자들의 시선이 180도 달라졌다.

사마라스 총리는 대외채권단인 국제통화기금(IMF), EU, ECB로 구성된 이른바 '트로이카'의 구제금융을 올해 말로 끝내고 내년부터 국채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겠다며 조기졸업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그리스는 2010년부터 트로이카로부터 2차에 걸쳐 2천40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EU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은 오는 12월에 끝날 예정이며, IMF의 구제금융 프로그램 일정은 2016년 3월까지다.

사마라스 총리는 지난 15일 국채와 주식 가격이 폭락하자 각료회의에서 "정부의 구제금융 졸업 노력이 현재의 개혁정책을 완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그리스 정부가 아직 120억 유로 남은 IMF의 구제금융을 받지 않는다면 그리스 정부가 개혁정책을 추진하지 못해 국제자본시장에 복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타키 미하스 평론가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투자자들은 트로이카가 떠난다면 그리스 정부가 개혁을 지속할 것으로 믿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리스 연립정부가 지난 11일 의회 신임투표 관문은 넘겼지만 내년 2월 대통령 선출에 실패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그리스 연정은 신임투표에서 정원 300명 가운데 155명의 지지를 받았지만 대통령 선출의 최소 요건은 정원의 60%(180명)로 추가로 25명을 확보해야 한다.

사마라스 총리는 현 의회가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으나 투자자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의회가 대통령을 선출하지 못하면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

사마라스 총리가 당수인 신민당은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득표율 22.7%에 그쳐 26.6%를 얻은 제1야당인 급진좌파연합(시리자)에 패배했으며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6%포인트 이상 뒤지고 있다.

시리자는 구제금융의 대가인 긴축정책에 반대하고 채무탕감을 요구하고 있어 연정과 투자자들은 시리자가 집권하면 다시 재정위기를 맞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그리스 정계 관계자는 "연정이 시리자도 찬성할 대통령 후보를 내세우거나 시리자를 제외한 야당에서 25명을 확보하는 등의 방안으로 대통령을 선출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그리스 정부·EU·ECB, 위기설 진화…스트레스테스트에 촉각
그리스 일간지 카티메리니는 이날 재무부 발표를 인용해 구제금융이 끝난 이후에도 자본시장에서 조달해야 하는 규모는 100억 유로가 넘지 않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재무부는 IMF의 지원이 중단되는 경우를 가정해도 국채나 재정증권 발행 등으로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니코스 덴디아스 개발부 장관은 전날 EU 집행위원회로부터 120억 유로의 자금을 즉각 지원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자금은 내년 말까지 전국의 여러 프로젝트에 지원할 예정으로 내년 경제성장률 목표인 2.9%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 정부는 지난 6일 내년 경제성장률은 2.9%, 기초재정수지 흑자는 국내총생산(GDP)의 2.9%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 예산안을 마련해 의회에 제출했다.

정부는 실질 GDP 증가율이 올해 0.6%를 기록해 지난해(-3.9%)까지 6년째 이어진 마이너스 성장을 끝내고 내년에는 2.9%까지 높아질 것으로 보고 감세 정책도 발표했다.

이위르키 카타이넨 EU 재정통화 집행위원도 전날 성명에서 "필요한 방법이 무엇이든지 그리스를 계속 지원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카타이넨 집행위원은 그리스가 전례 없는 개혁을 추진했다고 인정하고 합리적 자금조달 환경을 조성하고 완전하고 실제적인 금융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ECB도 그리스 시중은행들이 자금을 차입하면서 담보로 제공한 채권의 헤어컷(채무할인) 비율을 추가로 낮춰 은행의 부담을 덜어주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스 관리는 ECB의 이런 지원으로 그리스 은행들이 최고 120억 유로까지 차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리스 정부와 EU, ECB 등의 긴급 대책으로 금융시장이 진정됐지만 투자자들은 오는 26일로 예정된 유로존의 스트레스테스트에 주목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15일 그리스 4대 시중은행이 자본확충과 구조개혁 노력에도 대출 부문에 많은 문제가 남아있다며 스트레스테스트에서 추가로 자본이 부족함이 드러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스탄불연합뉴스) 김준억 특파원 justdus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