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여러 회사에서 '영감' 얻어…누구도 안 간 영역에 도전"
현대카드는 2001년 다이너스카드를 인수하며 신용카드 업계에 등장했다. 당시 현대카드의 시장점유율은 1.8%에 불과했다. 한 해 1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내는 꼴찌회사였다. 정태영 사장(사진)이 현대카드를 맡은 건 2003년이다. 대표를 맡은 지 얼마 안 돼 카드사태가 터졌다. 경영 환경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정 사장은 ‘오너 리더십’을 발휘하며 한 발 한 발 위기를 극복해 나갔다. 이후 10년도 안 돼 현대카드는 카드업계 선두권으로 치고 오르는 기적 같은 일을 이뤄냈다. 현대카드가 조직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다.

‘좋은 동료들과 높은 꿈을 꾸는 일터’로 현대카드를 정의하는 정 사장은 적극적인 소통으로 혁신의 해법을 모색한다. 직원들이 파워포인트(PPT)를 준비하느라 진을 빼고 있는 모습에 경악해 파워포인트 금지령을 내린 것도 소통의 결과다.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편리하다면 전화로 핵심 내용을 보고할 수 있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올해 ‘심플리피케이션’을 전사적 과제로 제시했는데요.

“두 가지 주요 목적이 있습니다. 첫 째는 상품과 운영의 고민을 회사 전체 수준에서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입니다. 이 고민이 없으면 회사 전체의 방향성이 실종됩니다. 한 해에 100종류의 휴대폰을 생산하는 회사를 생각해 보세요. 통일된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둘째는 회사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비대화와 관료화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 입니다.

급속히 성장해 온 현대카드도 그 과정에서 약점이 생겼습니다. 크고 작은 내부 프로젝트를 너무 많이 진행하다 보니 새로운 것에 집착하는 버릇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심플리피케이션’이 중요합니다. 생각을 단순화하고, 더 넓고 크게 보고, 일관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파격적인 인사 실험을 시행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스펙에 상관없이 특장점이 있는 사람을 우대하는 ‘스페셜 트랙’, 퇴사한 직원을 다시 불러들이는 ‘연어프로젝트’, 직원과 부서장이 사내 트레이드 시장을 통해 부서를 배치하는 ‘커리어 마켓’ 등을 도입했습니다. 인사는 기업문화와 함께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밑바탕입니다. 중요한 만큼 그에 합당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특히 융합에 대한 갈증이 많은 시대에 인력의 다양성과 융합은 옵션이 아니라 기본입니다.”

▷경쟁사들이 모방하는 데 대한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는데요.

“혁신은 ‘선도 업체로서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 내야 할 뿐이라고 믿고 고민한 결과’입니다. 선도업체의 장점이자 고충이기도 합니다. 사실 다른 카드사들이 우리의 겉모습을 카피하는 것에 큰 걱정은 없습니다. 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본질은 카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SNS상에서 신한·우리카드 등에 논쟁적 발언도 했습니다.

“저는 논쟁을 즐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담스러워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침묵만이 선’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금융업은 제조업, 통신업과도 경쟁하고 있습니다. 카카오톡과 알리페이는 자신의 입장을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금융회사들만 점잖은 척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면 시장은 누구의 편을 들겠습니까. 금융도 적절하게 시장과 교류해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해해주면 좋겠습니다.”

▷‘슈퍼콘서트’가 현대카드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지요.

“슈퍼콘서트는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광고로 기업이미지를 지금 수준까지 올리려고 했다면 이보다 몇 배의 비용이 필요했을 겁니다. 슈퍼콘서트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투자로 봐야 합니다. 올해 폴 매카트니 공연이 취소돼 아쉽습니다. 그가 동의한다면 한 번 시작한 일이니 매듭을 지으려 합니다.”

▷정말로 시장점유율에는 관심이 없는지요.

“점유율에 관심이 없는 신용카드회사는 없습니다. 우리도 당연히 관심이 있고요. 점유율이 떨어지면 규모의 경제가 불가능해지고 어려움이 커집니다. 진성 회원을 대상으로 한 실체성이 있는 시장점유율이어야 합니다. 연회비를 낮추고, 회원 심사기준을 낮추고, 지점 수를 늘리면 1등을 할 수 있겠죠. 그게 우리가 원하는 1등은 아닙니다. 어떤 1등인지가 중요하다는 얘기지요. 그런 의미에서 현대카드의 실제 시장점유율은 매우 높습니다.”

▷GE는 현대카드·캐피탈과 시너지를 내고 있습니까.

“GE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파트너였습니다. GE가 있어서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은 양과 질 모두에서 압축적 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보고 싶은 길을 먼저 가보았던 파트너에게 언제든 도움을 받는 것처럼 든든한 일은 없죠. 동반자 관계도 계속될 것입니다. 산탄데르 같은 새로운 동반자도 현대카드·캐피탈에 가세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다양한 파트너와 무리없이 일하며 시너지를 내고 있는 성숙함도 자랑하고 싶습니다.”

▷모방의 대상이 있습니까. 벤치마킹하는 회사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느 한 회사를 벤치마킹하는 건 없습니다. 여러 회사의 핵심 요소에서 인사이트를 얻는 것이죠. 대상이 금융업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조직의 제도와 시스템이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의 공장 라인시스템 속에서도 많은 걸 배웠습니다.”

▷세계 곳곳을 누비는 사장님의 ‘인사이트(Insight) 트립’도 화제입니다.

“인사이트 트립은 혼자서 가기 힘든 상상력의 도달점을 넓히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인사이트 트립을 통해 공장을 보고, 박물관을 보고, 오피스를 방문하면서 세상의 누가 어디서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넓어진 상상력만큼 우리가 닿을 수 있는 도달점도 확장되고 있는 셈입니다.”

▷최근 돈을 더 주고라도 철저한 외부감사를 받으라는 지시로 주목받았는데요.

“외부 감사도 철저히 받아야 건전성과 투명성을 더 강화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외부 감사 비용은 제대로 된 감사를 받을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감사비용을 아끼려다 내부 통제와 건전성에 적신호가 켜지면 수백배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제대로 된 외부감사는 오히려 큰 재무적 이익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카드의 미래 청사진은 무엇입니까.

“차별화된 문화를 쌓아온 것이 현대카드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문화가 작게는 마케팅, 크게는 전략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청사진이 있는 건 아닙니다. 남이 안 가 본 영역에 우리가 도전하겠다는 자신감과 막연한 꿈이 있을 뿐입니다. 좋은 동료들과 함께 이 막연한 꿈을 실현해 나갈 작정입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