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북해산 브렌트유 값은 4년 만에, 서부텍사스원유(WTI)는 1년10개월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미국의 ‘셰일 혁명’으로 인한 원유 공급 과잉과 글로벌 경기 부진에 따른 수요 감소, 미국 달러화 강세가 맞물린 결과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의 협력 관계를 깨고 유가 인하 정책을 내놓는 등 OPEC 회원국 간 시장점유율 경쟁도 유가 하락을 가속화하고 있다. 현재 배럴당 80달러대 중·후반 수준인 국제 유가가 연말 70달러대 중반까지 내려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브렌트油 4년만에 최저…"油價, 추세적 약세장 들어섰다"
○경기둔화…OPEC 균열도 가세

북해산 브렌트유는 13일(현지시간) 런던 ICE선물시장에서 전 거래일보다 1.5% 하락한 배럴당 88.89달러를 기록했다. 2010년 11월 이후 4년 만의 최저다. 지난 6월 고점 대비로는 23% 추락했다.

WTI는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0.1% 내린 배럴당 85.74달러에 거래됐다. 2012년 12월 이후 최저다. WTI 가격도 지난 6월 고점 대비 20%가량 하락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통상 1년 내 고점 대비 원자재 가격이 20% 이상 떨어지면 추세적으로 약세장에 들어섰다는 신호”라고 진단했다.

글로벌 경제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가 유가를 끌어내리고 있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이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중국과 브라질 등 신흥국의 성장 부진도 원유 수요가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7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글로벌 경제 성장률을 지난 7월보다 0.1%포인트 하향 조정한 3.3%로 전망하고 내년 성장률도 기존 4%에서 3.8%로 내렸다.

최근엔 OPEC 회원국 간의 균열이 유가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OPEC 회원국들은 원유 생산량을 조절해 원유시장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하지만 원유수급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OPEC 회원국 간 공조체제가 허물어졌다. OPEC의 ‘맏형’ 격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시장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유가 인하 정책을 택했다. 쿠웨이트와 이라크도 유가 인하에 동참했다. 이란은 아시아에 수출하는 원유 가격을 손익분기점 밑으로 낮췄다. 블룸버그통신은 “OPEC 회원국들이 시장점유율 전쟁을 벌이느라 가격에 신경 쓸 여유를 잃었다”고 분석했다.

○여유 있는 美, 유가 하락 부채질

‘셰일 혁명’에 힘입은 미국의 공급 증가가 유가 하락의 가장 큰 이유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의 지난주 원유 재고량은 500만배럴 증가했다. 예상치 200만배럴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생산량이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내년 하루 950만배럴로 1970년 이후 최대가 될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셰일오일의 손익분기점이 배럴당 60달러로 중동산 원유보다 낮기 때문에 미국은 유가 하락에 대한 부담이 적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유전 지역에 대한 공습을 본격화하지 않는다면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댄 스토블러 하이타워벨뷰 이사는 “연내 유가가 70달러 중반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헤지펀드를 비롯한 대형 기관투자가들은 유가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판단에 투자를 줄이고 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대형 기관투자가들은 이달 들어 WTI에 대한 순매수 규모를 5% 가까이 줄이고, 순매도 규모를 8%가량 늘렸다.

알리 알 오마이르 쿠웨이트 석유장관은 “다음달 27일로 예정된 OPEC 석유장관 회의에서 감산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유가가 배럴당 77달러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