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제윤 금융위원장 "한강의 기적 뒷받침한 한국 금융,'창조금융' 새 바람…세계로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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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 도약의 50년 - 50대 금융社
한국경제신문의 50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한경이 창간되던 1964년은 필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다. 올초 한경 인터뷰 기사(맛있는 만남)에 적힌 대로 그즈음의 필자는 몸이 약했고, 성격도 활달하지 않았다. 당시 한국의 금융 역시 비슷한 처지였던 듯하다. 그래서 더 금융에 애착이 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05년 대한제국 탁지부 고문으로 있던 일본인 메가타가 조선의 백동화와 일본화폐를 교환하는 화폐정리사업을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일본의 다이이치은행이 한반도의 중앙은행 지위를 확보하면서 우리의 화폐주권은 완전히 침탈당하게 됐다. 인고의 세월을 거쳐 광복을 맞이하지만 6·25전쟁으로 인해 그나마 남아 있던 금융 인프라마저 무너져 버린다. 폐허가 된 이 땅에 독립적인 통화 및 환율시스템을 구축하고, 각종 금융법령과 인프라를 구축하며 우리의 금융은 1960년대를 맞이하게 된다.
한국인의 저력은 역시 최악의 상황에서 항상 빛을 발했다. 제조업 중심의 실물경제 성장이 경제정책의 근간이었던 당시 금융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모든 역량이 경제부흥에 동원됐다. 외자도입기본법 개정을 통해 상업차관 등 해외자본 도입에 노력하는 한편으로 범국가적인 저축장려운동을 추진했다. 정부는 이렇게 모인 자금의 배분에도 직접적으로 개입했다. 훗날 ‘관치금융’의 시대로 폄하되기도 하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당시로서는 불가피했던 선택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산 증거다.
물론 모두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도태한 기업들이 부지기수에 달한다. 1997년의 외환위기로 또다시 수많은 기업들이 무너졌다. 이 모든 부담은 국민과 금융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나름 숨 가쁘게 실물경제의 눈부신 성과를 뒷받침해왔지만, 정작 금융 자신의 성적표는 따가운 눈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왜 금융에는 삼성이나 현대 같은 글로벌 기업이 없는지 묻기도 한다. 금융인의 한 사람으로서 억울한 측면도 있다. 금융이 자신의 성장을 위해 달려온 시간은 불과 십수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정말 한국 금융이 바뀌어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해서만은 동감할 수밖에 없다.
막상 고개를 돌려보면 오늘날 한국 금융이 처한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경제가 성숙단계에 진입하면서 저성장저금리, 고령화 등의 문제가 고착화되고 있다. 또 경제발전의 동인이 양적 요소 투입에서 아이디어와 기술로 변화하고 있다. 앞으로는 혁신성을 평가하고 가능성에 투자하는 능동적 금융으로의 변모도 요구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금융의 핵심이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이를 통해 구축한 역량은 해외시장의 개척에서도 중요한 일익을 담당할 것이다.
혹자는 한국 금융의 경쟁력이 아프리카 빈국인 우간다와 같은 수준이라고 폄훼하지만, 필자는 우리 금융의 저력을 믿고 있다. 언젠가 우리도 유수의 글로벌 금융회사들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다만 시간이 좀 필요할 따름이다.
지금은 미래를 위한 변화의 시간이다. 창조금융이라는 변화의 바람이 우리 금융의 체질을 바꾸고, 새로운 희망의 시대로 인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05년 대한제국 탁지부 고문으로 있던 일본인 메가타가 조선의 백동화와 일본화폐를 교환하는 화폐정리사업을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일본의 다이이치은행이 한반도의 중앙은행 지위를 확보하면서 우리의 화폐주권은 완전히 침탈당하게 됐다. 인고의 세월을 거쳐 광복을 맞이하지만 6·25전쟁으로 인해 그나마 남아 있던 금융 인프라마저 무너져 버린다. 폐허가 된 이 땅에 독립적인 통화 및 환율시스템을 구축하고, 각종 금융법령과 인프라를 구축하며 우리의 금융은 1960년대를 맞이하게 된다.
한국인의 저력은 역시 최악의 상황에서 항상 빛을 발했다. 제조업 중심의 실물경제 성장이 경제정책의 근간이었던 당시 금융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모든 역량이 경제부흥에 동원됐다. 외자도입기본법 개정을 통해 상업차관 등 해외자본 도입에 노력하는 한편으로 범국가적인 저축장려운동을 추진했다. 정부는 이렇게 모인 자금의 배분에도 직접적으로 개입했다. 훗날 ‘관치금융’의 시대로 폄하되기도 하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당시로서는 불가피했던 선택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산 증거다.
물론 모두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도태한 기업들이 부지기수에 달한다. 1997년의 외환위기로 또다시 수많은 기업들이 무너졌다. 이 모든 부담은 국민과 금융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나름 숨 가쁘게 실물경제의 눈부신 성과를 뒷받침해왔지만, 정작 금융 자신의 성적표는 따가운 눈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왜 금융에는 삼성이나 현대 같은 글로벌 기업이 없는지 묻기도 한다. 금융인의 한 사람으로서 억울한 측면도 있다. 금융이 자신의 성장을 위해 달려온 시간은 불과 십수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정말 한국 금융이 바뀌어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해서만은 동감할 수밖에 없다.
막상 고개를 돌려보면 오늘날 한국 금융이 처한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경제가 성숙단계에 진입하면서 저성장저금리, 고령화 등의 문제가 고착화되고 있다. 또 경제발전의 동인이 양적 요소 투입에서 아이디어와 기술로 변화하고 있다. 앞으로는 혁신성을 평가하고 가능성에 투자하는 능동적 금융으로의 변모도 요구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금융의 핵심이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이를 통해 구축한 역량은 해외시장의 개척에서도 중요한 일익을 담당할 것이다.
혹자는 한국 금융의 경쟁력이 아프리카 빈국인 우간다와 같은 수준이라고 폄훼하지만, 필자는 우리 금융의 저력을 믿고 있다. 언젠가 우리도 유수의 글로벌 금융회사들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다만 시간이 좀 필요할 따름이다.
지금은 미래를 위한 변화의 시간이다. 창조금융이라는 변화의 바람이 우리 금융의 체질을 바꾸고, 새로운 희망의 시대로 인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