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에도 셀카는 찍었다…'셀카봉'은 본능에 충실한 발명품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시겠어요?”

언젠가부터 듣기 힘든 말이다. 관광지 등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카메라를 건네주고 사진 찍는 일이 흔했지만, 사진의 결과물을 직접 보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가 늘어나면서 누군가에게 사진을 부탁할 필요성도 줄어들었다. 스마트폰 전면부 카메라의 화질이 좋아지면서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진 것 같다. 최근 여기에 종지부를 찍는 도구가 등장했으니, 바로 ‘셀카봉’이다.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막대 위에 스마트폰이나 카메라를 매달아 사진을 찍는 간단한 도구다. 배경이 거의 나오지 않던 기존 ‘셀카(셀프 카메라)’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혼자 여행을 가더라도 남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지 않고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초소형 드론(무인 비행체)을 활용한 촬영 도구도 선을 보이고 있다. 그야말로 ‘셀카 전성시대’가 열린 셈이다.

‘머스트 해브 아이템’ 셀카봉

100년 전에도 셀카는 찍었다…'셀카봉'은 본능에 충실한 발명품
셀카봉이 없다고 셀카를 찍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자신을 찍어도 되고 삼각대에 카메라를 얹고 무선 릴리즈나 타이머를 이용해도 된다. 하지만 삼각대는 도난의 위험이 도사리고, 손으로 카메라를 드는 것은 화각의 한계로 얼굴만 크게 나온다는 단점이 있다.

셀카봉의 장점은 인물과 카메라의 거리를 늘려준다는 것. 팔만 뻗을 때보다 카메라와 얼굴의 거리가 1m 이상 멀어지면서 화각도 넓어지고 배경도 더 많이 나온다. 과거에도 ‘모노포드’란 이름의 비슷한 장비가 있었다. 삼각대의 다리를 하나로 줄여 기동성을 높인 것이었다. 땅에 지지하며 쓰던 모노포드가 셀카봉으로 변모한 것은 스마트폰의 공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셀카의 역사는 사진의 역사

옥스퍼드 사전은 지난해 ‘셀피(selfie·셀카의 영어식 표현)’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하지만 셀카의 역사는 사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공개한 1909년 사진(왼쪽)은 100여년 전에도 셀카를 찍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중절모를 쓴 정장 차림의 신사들이 팔을 뻗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크게 낯설지 않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공개한 1909년 셀카사진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공개한 1909년 셀카사진
최초의 ‘셀카’는 이보다 70년 더 거슬러 올라간다. 1839년 이폴리트 바야르가 찍은 ‘익사한 사람의 초상’이다. 프랑스 정부는 1839년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의 사진술이 ‘최초’란 사실을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이후 조제프 니세포르 니엡스가 다게르보다 앞선 사진 발명가로 인정받았지만 당시 다게르는 프랑스 정부의 인정 덕에 명예도 얻고 매달 연금도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다게르와 경쟁했던 사진 발명가들이었다. 사진 기술 발전에 함께 공을 세웠지만 다게르만 정부로부터 인정받자 바야르는 항의하는 의미에서 익사한 시체로 연출한 셀프 사진을 찍었다. “정부는 다게르에게만 친절했고, 바야르에게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불쌍한 바야르는 결국 스스로 익사를 택했다”는 사진 설명을 달았다. 일종의 ‘설정 셀카’다.
1839년 이폴리트 바야르가 찍은 ‘익사한 사람의 초상’
1839년 이폴리트 바야르가 찍은 ‘익사한 사람의 초상’
셀카는 ‘일상의 기록’ 아닌 ‘왜곡된 사진’

전 세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하루 동안 업로드되는 셀카의 숫자는 100만장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좋은 레스토랑이든 멋진 여행지든 자랑할 만한 곳에서 사진을 찍고, 새로 산 차나 가방을 옆에 두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자신의 얼굴이 가장 아름답게 나올 최적의 각도를 찾기 위해 수십 번씩 셔터를 누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셀카는 ‘일상의 기록’이라기보단 고도의 선별 과정을 거친 ‘왜곡된 사진’이다. 셀카봉은 이런 왜곡을 더 쉽게 만들어주는 유용한 도구인 셈이다. 왜곡된 사진, 정확히는 ‘과시욕이 담긴 사진’을 찍는 모습이 현대인의 특징이라고 꼬집어 비판할 필요는 없다. 사진이 초상화를 대체하면서 빠르게 번성한 19세기 사진관들은 연미복, 드레스는 물론 각종 패션 소품을 구비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말까지 보유한 사진관도 있었다. 이쯤 되면 셀카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