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공포탄' 때론 '실탄'…외환당국의 '밀당 엿보기'
“오늘…들어왔습니까?”(기자)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A은행 외환담당자)

원·달러 환율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다가 불현듯 이런 전화를 걸 때가 있다. 질문을 풀어쓰면 ‘외환당국 개입이 시장에 들어왔느냐’다. 환율이 더 떨어지지(원화가치가 더 오르지) 않게끔 당국이 달러를 샀느냐는 의미다. 당국인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여기에 늘 ‘노코멘트’다.

올 들어 이들은 무척 바빴다. 원·달러 환율이 지난 4월 오랜 지지선이던 달러당 1050원 선을 깬 뒤 1010원 선까지 고속 낙하했기 때문이다.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수출업체들이 벌어온 달러가 시장에 자꾸 풀렸다. 원화 강세는 수출기업에 악재인 만큼 당국도 대응해야 했다. 환율이 급변할 때 당국이 시장에 개입해 그 속도를 조절하는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 조정)’이다. 이를 지휘하던 한 담당자에게 노하우를 물어봤다. 그는 “연애할 때처럼 달러 매입과 매도를 놓고 시장 참여자들과 밀당(밀고 당기기)에 통달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때론 '공포탄' 때론 '실탄'…외환당국의 '밀당 엿보기'
지난 5월30일 오전 9시. 외환시장이 열리자마자 수출업체의 달러 매도가 몰리면서 환율이 5년 만에 장중 1020원 선 아래로 떨어졌다. 이내 당국 개입으로 추정되는 달러 매수가 집중됐고 9시5분께는 1023원까지 뛰었다. 1020원 선은 방어하겠다는 당국의 강력한 의지였다.

환율이 1020원을 밑돌진 않겠다는 시장의 신뢰가 형성되면서 환율 급락세가 진정됐다. 문제는 시장이 당국의 개입을 역이용할 가능성이다. 당국이 일정 환율에서 무조건 달러를 사주면 파는 입장에선 이득이다. 비싸게 달러를 넘길 수 있다. 이들은 수출기업이거나 엄청난 물량을 가진 헤지펀드 등 역외세력일 수도 있다.

당국이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외환당국이 달러를 사주는 과정에서 시중에는 원화가 풀린다. 이 유동성을 흡수하려면 통안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이 이자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당국, 결국 국민이다. 한은 관계자는 “세금으로 환율 하락을 막는 셈”이라며 “달러를 비싸게 판 기업이나 역외세력에 그만큼 돈이 흘러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당국의 환율방어 의지가 너무 강해 보여도 문제다. 그래서 때로는 허점을 친다. 환율이 지지선 아래로 떨어지는데도 당국이 별 개입을 하지 않는 날이 있다. ‘1020원 선 아래로는 절대 안 뚫리겠지’라고 믿고 달러를 시장가격에 대거 팔았다가는 기대한 1020원 이상 원화를 받을 수 없어 큰코다친다.

한 투자은행 관계자는 “가끔 ‘큰손’ 중 하나가 이런 식으로 손해를 봤다는 소문이 돈다”며 “잠깐이라도 일방적 베팅을 자중하는 분위기로 변한다”고 말했다. 사실 외환당국은 깔볼 대상이 아니다. 한 선물회사 관계자는 “하루 10억달러, 즉 국내 외환시장(현물) 거래액 10분의 1을 차지하는 큰손이 바로 당국”이라고 평가했다. 원·달러는 국내에서 정해진 시간(오전 9시~오후 3시)에만 직접 거래돼 가능한 일이다.

정작 당국은 자신의 위력을 언급하는 데 조심스럽다. 환율 조작국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주요국 중엔 외환시장 개입을 매일 얼마나 했나 당당히 고시하는 곳도 있다”고 설명했다.

더 좋은 개입 방법은 따로 있다. 당국자 입으로 경고만 한 뒤(구두개입) 미세조정은 하는 척만 하는 것이다. 달러 매수 등 ‘실탄’을 쏘지 않고도 시장심리를 움직이는 ‘고수의 방법’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첫 금융통화위원회 데뷔전을 치른 지난 4월10일. 쏠림을 주시한다는 그의 말에 환율은 급반등했다.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