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20억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겁니다. 현재 세계 일자리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예요.”

세계적인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 다빈치연구소 소장은 3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사람이 돈을 받고 일하는 직업은 시대가 요구하는 니즈나 트렌드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기 때문에 미래의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촉매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완전히 새로운 산업 분야를 만들어내는 촉매 기술이 수많은 주변 산업과 직업을 창출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3차원(3D) 프린터가 대표적이다. 과거의 기술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산업과 일자리를 소멸시키는 ‘파괴 기술’과 대조되는 개념이다.

프레이 소장은 오는 11월4~6일 서울 광장동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리는 ‘글로벌 인재포럼 2014’에 참석해 4일 기조세션Ⅲ(청년 창업과 일자리 정책)에서 강연할 예정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20억개의 일자리가 소멸할 것으로 보는 이유는.

“스마트폰에서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 하나를 다운로드할 때마다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진다. 지금까지 사람이 해오던 일을 스마트폰 앱이 대신하기 때문이다. ‘레벨(level·면의 기울기를 측량하는 기구)’은 배의 수평 상태를 측정하기 위해 작은 타원형 모양의 유리관에 금속으로 만든 광학기기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앱으로 간단히 배의 수평 상태를 측정할 수 있게 됐다. 더 이상 레벨에 들어가는 유리와 금속 부품을 생산·조립할 필요가 없어졌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없어진 셈이다. 그동안 공장에서 하던 대부분의 작업이 자동화되고 로봇이 대신하게 되면서 고용주는 사람을 고용하기를 점점 더 꺼리게 될 것이다. 임금도 문제지만 인력을 관리하는 게 고용주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고용(people-less)’ 기업이 늘어나면서 수많은 일자리가 소멸할 것이다.”

▷새로운 직업도 생기지 않겠나.

“물론이다. 일자리가 없어져도 일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일거리에서 해방될 수 없다. 하지만 좀 더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고용 성장’을 위해서는 혁신이 필요하다. 기술이 일자리를 없애고 있지만 해답도 기술에서 찾아야 한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세상을 여는 ‘촉매 기술’이 고용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슈퍼 고용의 시대’다.”

▷촉매 기술의 예를 든다면.

“페이스북이 지난 3월 가상현실 기기업체인 ‘오큘러스 VR’을 20억달러에 인수했다. 가상현실 기기 개발자와 엔지니어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가상현실 전문가는 아직까진 각광받고 있지 않다. 하지만 당장 내년부터는 떠오르는 인기 직업이 될 것이다. 3D 프린터도 촉매 기술의 대표적인 예다.”

▷이번 인재포럼에서 ‘청년 창업’에 대해 강연하기로 돼 있다. 창업을 준비 중인 한국 청년들에게 해줄 조언은.

“우선 자신이 닮고 싶은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 좋다. 그런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쌓는 한편,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다들 아는 얘기일 수 있지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창업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함께할 때 성공할 확률이 높다. 서로 배우고 영감을 얻으면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업의 성공 사례를 든다면.

“최근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을 졸업한 그레이스 최는 색조 화장품을 만들 수 있는 가정용 3D 프린터 ‘밍크(Mink)’를 개발했다. 이 제품은 고급 화장품 시장을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데이비드 에럴비는 발달장애를 가진 어린이와 노인을 위한 가사 도우미 업체 ‘홈케어(HomeCare)’를 세워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미국 프리스타일 스노보드 챔피언이었던 션 켈리는 건강에 좋은 음식을 파는 자판기 업체를 세웠다. 이들의 공통점은 남이 하지 않는 틈새 시장을 정확히 파악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청년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브루킹스연구소가 ‘혁신 지구’라고 부르는 창업 지원 공간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혁신 지구는 최첨단 기술 연구소와 기업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들은 ‘공동 발명’이나 ‘공동 생산’을 통해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창업 보조금이나 인센티브도 좋지만 이런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경제성장 둔화를 고민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으려면.

“기존에 없는 새로운 인프라 기술을 개발해 다른 나라를 선도해야 한다. 무인 자동차 시대가 열리면 무인 자동차 전용 고속도로 건설·운영을 위한 인프라가 필요할 것이다. 대기에서 지속적으로 물을 추출할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런 인프라 기술을 선도적으로 개발하는 나라가 향후 세계 경제를 이끌어갈 것이다.”

▷한국인 중 존경하는 사람이 있나.

“많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은 세계적으로 유능한 사업가들이다. 하지만 앞으로 남북 통일의 물꼬를 트는 사람을 가장 존경하게 될 것이다.”

■ 미래 일자리 바꿀 5가지는

토마스 프레이 다빈치연구소 소장은 구글이 선정한 세계 최고의 미래학자다. 세계적인 미래학 저널 ‘더 퓨처리스트’의 편집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빈치연구소를 세우기 전 15년간 IBM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270여개의 상을 받기도 했다. 미국 내 상위 0.1%의 지능지수(IQ)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인 ‘트리플나인소사이어티’의 회원이며, 저서로는 ‘미래와의 대화’ 등이 있다. 그는 가까운 미래에 △무인 자동차 △온라인 강의 △3차원(3D) 프린터 △에너지 발전 △로봇 등 다섯 가지 산업 부문의 판도가 크게 바뀔 것으로 전망한다.

(1) 무인 자동차

프레이 소장은 앞으로 10년 내 무인 자동차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로 인해 무인 택배, 무인 식료품 배달 등의 서비스가 급부상하게 된다. 택시·버스 운전사, 교통 경찰 등 다양한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 교통사고가 급감하면서 외과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도 줄어들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2) 온라인 강의

프레이 소장은 “학생들이 정해진 시간에 맞춰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어진다”고 말한다.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을 통해 교육 콘텐츠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2년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가 대학 강의를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하는 오픈코스웨어(온라인 강의 공유 프로그램) 사이트를 개설한 게 대표적 사례다. 학습을 위해 교사가 아닌 코치, 멘토, 가이드가 필요하게 되며 2020년 이후에는 교사 없는 교육 시스템이 정착할 것으로 그는 예상하고 있다.

(3) 3D 프린터

현재 3D 프린터 기술은 의약품과 식품을 제작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3D 프린터를 이용한 의류산업은 2016년 31억달러, 2020년 52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프레이 소장은 예상한다. 최근에는 3D 프린터로 건물을 짓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4) 에너지 발전

2030년까지 기존 전력회사는 모두 사라질 것으로 프레이 소장은 전망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대체에너지 등 더 좋은 에너지를 찾기 위한 노력이 수년간 지속되면서 종전의 전력회사는 할 일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화석연료시대가 끝나고 재생에너지, 청정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게 된다.

(5) 로봇

로봇 산업은 각국의 국방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미국 보스턴 다이나믹스사의 4족 보행 군사용 로봇이 개발된 상태다. 위험한 분쟁 지역에 군인들이 아닌 로봇이 대신 군수물자를 운반하게 된다. 로봇 산업의 부상으로 로봇 수리공, 로봇 시설 관리사 등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난다.

■ 프레이 다빈치연구소장은

△1954년 5월 출생 △사우스 다코타 주립대, 로레타 하이츠 칼리지 졸업 △IBM 엔지니어·디자이너로 15년 근무 (혁신 관련 270여회 수상) △IQ천재 모임 ‘트리플나인소사이어티’ (전 세계 1225명) 회원 △세계미래협회 격월간지 ‘더 퓨처리스트’ 편집인 △‘미래와의 대화’ 저자 △구글 선정 세계 최고의 미래학자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