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에 수억원씩 투자
시중금리가 낮아진 데다 증시마저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거액 자산가들이 해외 채권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예탁된 해외 채권 잔액은 지난 17일 현재 88억5200만달러로, 작년 말 대비 8.1%(6억6100만달러) 늘어났다.
우리투자증권이 지난 6월부터 판매해온 러시아 국영기업 가즈프롬 회사채도 인기를 끌고 있다. 지금까지 180억원어치가 팔렸으며, 1인당 투자액은 평균 3억원으로 집계됐다. 김진곤 프리미어블루 강북센터 상무는 “러시아의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되고 있지만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업체여서 부도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예상 수익률은 연 5% 선”이라고 전했다.
최소 수십억원 단위로 투자하는 초고액 자산가 사이에선 ‘미국채 달러표시 단기 할인채’가 인기다. 증권사들은 만기가 1~2개월 남은 미국 국채를 대량 매입해 부유층에 쪼개서 판매하고 있다. 연환산 2.7% 수준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할인채(이자가 없는 대신 채권가격이 액면가보다 낮은 채권)다.
같은 만기의 예금보다 2~3배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은 선물환 프리미엄(선물환율이 현물에 비해 높을 때 발생하는 차익)에다 비과세 효과까지 있어서다. 신한금융투자의 한 PB팀장은 “표면이자가 제로인 미국채를 액면가보다 0.035% 싸게 사는 방식이어서 이자소득세를 낼 필요가 없고 금융소득 종합과세에서도 제외된다”고 소개했다.
달러표시 스위스 채권도 미국채 할인채와 비슷한 구조다. 신한금융투자가 올해 판매한 미국채 할인채는 300억원, 스위스 채권은 380억원 규모다.
중국 본토 채권을 찾는 자산가도 계속 늘고 있다. K운용이 지난 5월 선보인 ‘중국개발은행 채권’ 펀드엔 1500억원이 쏠렸다. 목표 수익률은 연 4%대다. 동양자산운용은 이달 초 비슷한 형태의 ‘동양차이나 본토채권’ 펀드를 선보였다.
부유층뿐만 아니라 일반 직장인 사이에서도 해외 채권이 각광받고 있다. 주도하는 상품은 브라질 국채다. 미래에셋·한국투자 등 5개 대형 증권사가 올 들어 판매한 브라질 국채는 1조원을 넘는다. 손병호 미래에셋증권 신탁운용팀장은 “표면이자가 연 10%대로 높은 데다 비과세 혜택까지 있지만 환위험에 노출된다는 게 약점”이라며 “여윳돈으로 장기 투자할 것을 권하고 있다”고 했다.
조재길/황정수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