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기술표준원의 철 지난 제습기 평가
‘제습기 안전성 전면조사, 2개 업체 4개 모델에 개선명령.’

산업통상자원부 소속기관인 국가기술표준원이 19일 배포한 보도자료 제목이다. 여름철 수요가 많은 제습기의 안전성을 조사한 자료였다. 하지만 A4용지 두 장짜리 분량의 보도자료엔 일부 제품이 경사도 10도에서 넘어지는 여부를 판단하는 ‘전도 안정성’에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는 내용만 있을 뿐 업체나 모델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화해서 이유를 물어봤다. 표준원 관계자는 “제품명을 적어야 한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현행 ‘제품안전기본법’에는 표준원의 조치 중에 가장 수위가 높은 리콜에 대해선 해당 제품 이름을 명기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이보다 수위가 낮은 개선명령엔 이 문구가 없다는 것. 요컨대 제품명을 적을 수도 있었지만 규정상 적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해 ‘고유명사’를 뺐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소비자들은 알 권리가 있지 않겠느냐고 묻자 이 관계자는 “그렇긴 한데, (제품명을) 적었을 때 해당 업체들의 항의가 많을 것 같아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보도자료가 나온 시기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제습기는 장마철을 대비해 미리 장만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도 지난 5~6월 판매량이 가장 많았다. 그런데 표준원은 여름이 거의 끝나고 있는 지금에서야 안전성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조사 착수시점부터 때를 놓친 것이었다. 이번 결과를 내놓기 위해 국내에서 유통 중인 27개 제품에 대해 감전, 온도상승, 누설전류, 절연내력 등에 대해 시험을 시작한 시점은 지난 7월16일이었다.

이제서야 철 지난 보도자료를 내는 이유를 재차 물어봤다. 표준원 측은 “제습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 것”이라는 대답만 했다. 이렇게 초점이 맞지 않는 문답이 되풀이됐다.

시기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표준원이 스스로 표방한 대로 소비자들의 권익을 생각해 자료를 냈다면 문제가 있는 제품은 그 내역을 상세하게 알리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이날 ‘깜깜이’ 보도자료로 23개의 정상 제습기들도 의심을 받게 됐다.

김재후 경제부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