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해외직구(直購)가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한 가운데 유독 TV 제품의 반입량이 최근 2년 새 100배 가까이 는 것은 한 번의 클릭으로 얻을 수 있는 가격혜택이 50만원 안팎을 넘나들기 때문이다. 해외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면 배송료와 각종 세금을 내고도 국내가보다 최소 20~30% 이상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 인터넷 쇼핑을 겁내지 않는 소비자들이 ‘입소문’을 타고 속속 가세하면서 ‘직구 열풍’은 갈수록 맹위를 떨칠 전망이다.
해외 '클릭' 한 번에 TV가격 40만~50만원 절감…유통빅뱅 오나
○250만원 vs 150만원

LG전자의 47인치 LED TV(모델명 47LB5800)의 아마존 판매 가격은 599달러. 15일 현재 환율(달러당 1021원)을 적용하면 61만1579원이다. 같은 모델명을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서 검색해보면 135만원 전후에 판매되고 있다. 액면 가격만 놓고 보면 절반도 안 된다.

여기에 관세, 부가세, 배송료 등을 합쳐도 소비자들에겐 큰 이득이다. 599달러짜리 제품 관세는 가격의 8%인 4만8926원이고 제품 가격과 관세를 더한 가격의 10%에 해당되는 부가가치세는 6만6050원이다. 배송료는 보험료를 포함해 150달러(15만3150원) 정도. 여기에 국내 택배비 3만원을 더하면 최종 가격은 90만9705원이 나온다. 국내에서 사는 가격(135만원)보다 44만원이나 저렴하다.

비싼 제품일수록 가격 차이는 더 벌어진다. 삼성전자의 60인치 LED 스마트TV(모델명 un60fh6200fxza)는 국내에서 구매하면 250만원을 호가하지만 이베이에서 해외직구하면 관세 등을 포함해도 100만원이나 저렴한 150만원이면 살 수 있다. LG전자의 65인치 LED TV(모델명 65UB9500)의 경우 국내에선 500만원을 줘야 사지만 아마존 등 해외 쇼핑몰을 통하면 390만원(관세 등 포함 가격)이면 살 수 있다. 가격 차이는 110만원에 달한다. 해외배송 대행업체 몰테일의 유성호 홍보팀장은 “국내외 가격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면서 배송 주문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전했다.

○직구 불안감 거의 해소돼

그동안 해외직구로 TV를 구매할 때 소비자들이 느끼는 가장 큰 불안요인은 배송 과정에서의 파손이나 고장이었다. 무상 수리·보증(AS)이 안 되는 제품도 있었다. 국내 케이블 TV와 연결 시 에러가 나거나 TV 화면에서 한국어 지원이 되지 않는 불편함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장애물들이 사라지고 있다. LG전자가 해외직구 제품에 대해 지난 4월 말부터 무상 AS(1년)를 시작한 것. 삼성전자는 이미 전 세계 어디서 구입하든 1년간 AS를 해 주는 ‘월드워런티’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해외직구 배송대행 업체 간 경쟁 격화로 배송료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이 업체들은 2만~3만원만 추가하면 배송 과정에서의 파손 등에 대비할 수 있는 보험도 가입해준다. 지난해부터는 한국어 지원이 가능해졌고, 케이블 TV와의 연결 문제도 셋톱박스의 기술 발전으로 해소됐다. 특히 올해부터 해외직구로 구매한 물건을 반품하면 이미 낸 관세 등을 환급받는 것이 가능해진 것도 해외직구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기존 판매망에 위기감 엄습

무상 AS에 나선 제조업체들은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해외직구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이렇게 커질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며 “자동차에 비해 (직구가) 손쉽고 일반 의류제품 등에 비해서는 가격인하 효과가 크다는 점이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판매 가격을 낮춰서 대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미국처럼 모든 글로벌 기업들이 완전경쟁을 펼치는 시장과 일부 기업이 경쟁을 하는 한국과는 사정이 다르지 않으냐”고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지금처럼 폭발적인 속도로 직구가 증가할 경우 기존 전자제품 판매망에 균열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위기감이다. 올해 해외직구를 통한 TV 반입 규모는 2만여대로 추정된다. 아직은 국내 시장 규모(200만대)의 1%에 불과하지만 직구 비중이 5%, 10% 선을 넘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유통업계 한 전문가는 “그동안 국내 시장을 손쉽게 양분해온 삼성, LG는 이제 외부로부터 유통혁신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임원기/조미현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