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5~31일 서울 인사동 통큰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간호사 출신 중견 화가 이영진 씨(59). 그는 자신의 미술세계 입문에 대해 “정신적 긴장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자연의 순간을 원색으로 잡아내는 게 몸속에 지닌 신명 같은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한양대 간호학과를 나와 1990년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한 이씨는 초기에는 주로 수채화풍의 장미를 그렸다. 하지만 곧바로 우리 고유 오방색의 매력에 빠져 인간의 소통과 치유 문제를 색면에 녹여냈다. 그의 색면 추상화는 2006년 대한화재(현 롯데손해보험) 달력으로 만들어져 단번에 유망작가군에 이름을 올렸다.
이씨는 “미술 소재를 주로 연어떼의 귀소 본능과 클래식 음악에서 찾는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 주제도 ‘연어떼와 선율’로 정하고, 어군탐지기를 통해 연어들이 떼를 지어 고향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색면으로 승화한 30여점을 건다.
경기 광주 퇴촌의 작업실에서 매일 10시간 이상 붓질에 매달린다는 작가는 “드라마틱하게 느껴지는 연어떼의 꿈틀거림 속에는 클래식 선율의 장엄함과 숭고함이 숨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선율과 연어의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조화롭게 버무려 무녀의 춤사위처럼 화면에 담아냈습니다. 그래서 국내 화단에서는 제 작품을 보고 ‘색채의 샤머니즘’ 또는 ‘신명의 회화’라고 부르더군요.”
실제로 그의 작품에는 색 덩어리들이 꿈틀거린다.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색 덩어리의 미적 관계가 아니다. 오직 치유, 운명, 황홀 등 기본적인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끝없는 욕심과 욕망으로 병들어가는 현대인의 영혼을 치료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게 간호사를 포기하고 화가로 변신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아마 붓을 놓는 순간까지 그림의 콘셉트를 ‘영혼의 치유’로 끌고 갈 생각이고요.”
20여년 동안 오방색에 집착하며 씨름했다는 이씨의 작품 세계는 10년을 주기로 ‘진화’를 거듭해왔다. 1990년 초에는 장미를 통해 내면의 강화에 역점을 뒀고 2000년에는 역동적 제스처의 회귀, 2010년 이후에는 ‘색의 신명’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주목받았다.
“초기에는 마음속의 움직임에 역점을 두면서 형태와 여백 간 균형을 모색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오방색 필체로 화면을 장악하면서 영혼의 치유를 신들림처럼 ‘색들림’으로 축조했고요. 결국 이는 최근 국내외 화단에 새롭게 부각된 ‘색의 치유’라는 새로운 장르의 바탕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02)732-384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