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편리, 이국적 카페 몰리면서 20대 몰려‥
급변하는 이태원 모습, 제2의 신흥 상권 될까


이태원 경리단길, 왜 뜨나 가봤더니 … 한국 속 작은 외국
14일 오후 5시 저녁식사를 위해 찾은 서울 이태원. 유명 초밥집 ‘기다스시 포차’ 앞에는 20여명 정도가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식사를 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냐고 묻자 “최소 1시간에서 1시간 반”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이태원 경리단길, 왜 뜨나 가봤더니 … 한국 속 작은 외국
요즘 다양한 맛집과 트렌디한 식당들이 대거 등장해 뜨는 곳이 있다. 녹사평역 2번 출구에서 시작해 이태원로 쪽으로 이어지는 삼거리 ‘경리단길’이다.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이국적인 음식점들도 넘쳐난다. 외국의 한 거리를 옮겨놓은 듯하다.

이곳은 웬만한 음식점은 모두 맛집으로 불릴만하다. 여러 유명 디자이너와 셰프들이 조용히 등장하면서 맛과 멋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태원 경리단길, 왜 뜨나 가봤더니 … 한국 속 작은 외국
홍대와 강남 일대 상권이 체인점과 프랜차이즈 카페로 포화상태에 달하자 용산구 이태원동이 풍선효과를 보고 있다. 저마다의 개성으로 꾸며진 식당과 카페, 외국인들을 통해 느껴지는 다양한 문화와 먹거리가 매력적이다.

경리단길은 젊은층이 선호하는 문화·휴식 공간이다. 과거 획일적인 쇼핑과 요식업의 상권을 벗어나 저마다 개성을 내세우고 있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나 대학생들 사이 모임공간으로도 인기다. 온라인상에는 경리단길 데이트와 투어코스까지 등장해 SNS를 타고 홍보되고 있다.

3500원짜리 얼굴만한 피자, 7000원 흑맥주의 행복 ‘더 부스’

이태원 경리단길, 왜 뜨나 가봤더니 … 한국 속 작은 외국
“한국맥주는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 이 사실은 지금도 변함없다.” 2012년 11월 영국 유력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한국 맥주 맛을 비판한 기사가 등장했다.

이 기사는 ‘화끈한 음식, 따분한 맥주(fiery food, boring beer)’란 헤드라인을 달았다. “맛 없는 김치 맛은 용서 못하는 한국인들이 왜 따분한(boring) 맥주는 잘 마실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 양 업체가 장악한 한국 시장에서 원료인 맥아 대신 쌀이나 옥수수를 넣어 맥주를 만들기도 한다” 면서 “영국 장비를 수입해 만드는 북한의 대동강 맥주가 훨씬 맛있다”고 주장했다.

대담한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당시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이었던 다니엘 튜더(32). 그는
기사가 나간 지 반 년쯤 지난 2013년 5월 이태원 경리단길에 수제 맥줏집을 직접 차렸다.

이태원 경리단길, 왜 뜨나 가봤더니 … 한국 속 작은 외국
벽면을 도배하는 형형색색의 그래픽 아트와 나무상자를 쌓아 만든 테이블과 의자는 맥주 바(bar)의 느낌보다 창고 같다.

‘더 부스’를 비롯해 ‘크래프트웍스’ ‘맥파이’ 등 유명한 전문점이 즐비한 경리단길은 수제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지’로 불린다.

치즈피자와 콤피네이션 피자, 흑맥주와 생맥주. 각각 2종류인 간단한 메뉴와 저렴한 가격 덕에 주말 저녁이면 서울은 물론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조금만 늦게 가면 맥주가 떨어져 버리는 일도 다반사다.

직접 맛을 보니 생각보다 쌉싸한 맥주맛과 치즈가 잔뜩 얹어진 치즈 피자는 든든한 식사였다.
젊은 20대도 많이 오지만 외국인들도 자주 찾아 피자와 맥주를 사간다.

피자집에서 만난 대학생 이모 씨는 "교통도 편리하고 신촌, 명동과도 가까워 자주온다" 며 "이태원은 독특하고 세련된 느낌이 나서 좋다" 고 말했다.

평일 이태원은 한국인보다는 외국인이 더 많아 마치 외국에 와있는 기분도 느껴진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사이트에선 ‘영어공부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곳’이 바로 이태원이라고 쓰여있다.

이태원 경리단길, 왜 뜨나 가봤더니 … 한국 속 작은 외국
방학이면 많은 대학생들이 이태원으로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몰리는 현상도 발생한다. 이전에는 주로 외국인이 찾았지만 유학·어학연수를 다녀온 젊은 층이 늘어나면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

이태원 일대 부동산 가격 급승' ‥ 주민들은 소음탓에 고생

상권이 뜨면서 일대 부동산 가격도 오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태원의 낡고 허름한 건물을 사들여 리모델링하며 새로운 사업을 계획하기도 한다. 경리단길의 상가 임대료와 권리금은 크게 올랐다.

이태원 경리단길, 왜 뜨나 가봤더니 … 한국 속 작은 외국
경리단길에서 한 주민은 “과거에는 노인들만 사는 동네였는데 요즘엔 밤낮 없이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끄러운 동네"라고 말했다.

올 4월 국토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31조 고도지구 제한이 일부 완화되면서 투자 환경도 좋아졌다. 과거 경리단길 일대는 기존 고도제한에 걸려 건물을 최대 5층, 20m까지 지을 수 있었다.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건물의 층수 제한이 없어져 건물을 신축하거나 증축 할 때 높이 20m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고층수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상권 활성화를 그다지 반기지 않는 주민들도 많다. 급격히 오른 월세값과 새벽 3시도 큰 소리로 울리는 음악소리에 좀처럼 잠들기 쉽지 않다는 것.

추억이 가득했던 문화공간이 하루걸러 진행되는 공사로 빠르게 바뀌면서 주변 거주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소소한 생계형 가게들과 작고 오래된 식당들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할머니가 운영하는 수선집, 피아노 교습소도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 이태원의 옛 풍경은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한경닷컴 승은정 인턴기자 (숙명여대 의류학과 4년) sss36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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