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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 칼럼] 軍 사기 올려야 사고 막는다
8사단 윤모 일병이 선임병들의 폭행과 가혹행위로 숨진 뒤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번 참극은 육군의 관리부실이 빚어낸 인재(人災)다. 윤 일병이 기거한 의무반 생활관은 외딴 곳에 있다. 다른 부대보다 관리감독이 더 중요한데도 지휘관들은 윤 일병이 죽기 전 12일 동안 매일 폭행을 당하는 것조차 몰랐다. 병사들을 통제해야 할 23세 하사는 25세 병장을 형이라 부르며 가혹행위에 가담할 정도였다. 더구나 국방부와 육군 수뇌부는 이런 사실을 숨기려 했다. 다만 ‘군대판 세월호 사건’이라고 싸잡아 비난하며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앞서 병든 병영의 속사정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진회'가 접수한 내무반

육체와 정신이 건강한 청년이 입대하더라도 상명하복의 집단생활에 적응하기란 힘든 일이다. 공군이나 해군, 해병대와는 달리 징집제로 신병을 충원하는 육군은 말할 것도 없다. 징병검사에서 심리상태가 취약하다고 판정받은 2만6000여명이 매년 입대한다. 중졸자 및 고교 중퇴자 1만여명이 전·후방을 지킨다. 사단마다 입대 전 범법자가 10명쯤 된다. 병사의 10%가 반복면담 및 관리가 필요한 요주의 인물이다. 복무기간이 단축된데다 징집 자원도 줄어든 탓이다. 허남성 위기관리연구소장은 “가정과 학교에서 자녀와 학생에게 이기적인 경쟁만 부추기면서 양산된 ‘일진회’가 군 내무반을 접수한 셈”이라고 진단한다.

이런 병사들과 얼굴을 맞대고 통솔하는 중대장과 소대장, 부사관의 자질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열악한 근무 여건에 비해 보상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병사들에게 휴가명령을 내리고 훈련 강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중대장의 35%는 2~3년 뒤 전역하는 복무연장자다. 취직을 걱정해야 할 판에 평소 부대원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질까.

초급간부의 자질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급여와 권한, 교육, 상벌체제에서 획기적인 우대조치가 절실하다. 고위 지휘관들도 임관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들뻘 되는 병사들과 장거리 행군을 하고 나란히 줄을 선 채 식판에 배식을 받는다면 어찌될까. 자발적인 복종은 물론 강군 육성도 자연스럽게 실현될 것이다. 야전에 나가 병사들과 수시로 대화하기보다는 사무실에서 보고받기를 좋아하고, 인맥 쌓기에 급급한 간부가 출세한다면 병영의 대형 참사는 언제든 재발할수 있다.

소수 정예화가 중장기 해법

그간 군은 결과만을 중시해왔다. 이러다 보니 행동이 굼뜨고 암기도 신통치 않은 병사를 보듬기는커녕 ‘고문관’이나 ‘기수열외’로 피해를 주는 관행이 지속됐다. 성과 달성에 몰두한 나머지 인권을 경시해온 폐습부터 철저한 교육과 관리감독을 통해 근절돼야 한다. 김성년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병사들의 공감능력을 키워주고 약자 돕기를 좋은 행동으로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군 문화를 혁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11일 신임 육군참모총장이 취임식을 갖는다. 군 수뇌부는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싸울 때마다 이기는 군대(常勝軍)’를 만드는 데 직을 걸어야 한다. 인구 감소 추세에 부응하고 자본집약적 무기체계 도입 증대에 맞춰 노동집약적 군 인력를 소수 정예화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정치권과 민간 부문도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최승욱 선임기자 s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