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둥근 공 '브라주카' /아디다스 코리아 제공
가장 둥근 공 '브라주카' /아디다스 코리아 제공
“월드컵 3·4위 결정전은 스포츠 정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진행하지 말아야 할 경기다.”

네덜란드 축구 대표팀의 루이스 판 할 감독이 지난 7월 10일 2014년 브라질 월드컵 4강전 아르헨티나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배한 뒤 이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3·4위전 무용론인 셈입니다. [독일 축구전문지 ‘키커’보도]

판 할 감독은 그 이유로 “네덜란드팀의 경우 3·4위전을 치르기 전에 단 이틀 밖에 쉴 수 없고 무엇보다 이 경기에서 지는 팀은 두 번 연속 패하는 아픔을 경험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월드컵 3·4위 결정전은 죽자고 싸워서 이긴 들 시상대에 오르는 것도 아닌 터라 일견 그의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와 달리, 올림픽의 경우 3위를 하면 시상대에 당당히 올라 동메달을 목에 겁니다. 이 때 동메달리스트는 바로 전 경기에서 패한 은메달리스트 보다 ‘만족도’가 더 높다는 분석이지요.

그러나 월드컵에서 이 게임을 치르지 않게 되면 막대한 ‘손실’를 감수해야 할 지도 모르는 국제축구연맹 FIFA가 이에 ‘귀를 열’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튼 브라질과 네덜란드는 자신을 각각 이긴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결승전에 하루 앞선 7월 13일 일요일 새벽 5시, 브라질리아의 마네 가힌샤 경기장에서 3·4위전을 갖습니다.
/이미지=네이버 스포츠 캡처
/이미지=네이버 스포츠 캡처
축구팬 입장에서 이 경기는 사실 흥미가 반감합니다. 앞서 판 할 감독의 무용론 주장에서 보다시피 그렇습니다. 그러나 내용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흥미를 돋우는 두 가지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4강전에서 독일에 1 대 7이라는 치욕스런 스코어로 패한 개최국 브라질이 ‘나라 (현 정부)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이겨야 한다는 것이 꼽힙니다. 이 경기에서 마저 패할 경우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겠지요.

또 다른 것으로 이 경기에서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다음날 열리는 결승전에서 어느 나라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지 예측 (가늠)해 볼 수 있다는 건데요. 무슨 소리냐고요?

이는 공교롭지만 1994년 미국 월드컵 이래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까지 5개 대회 연속으로 ‘3위팀을 4강전에서 누른 국가가 우승했다'는 기록에서 비롯합니다. 1위와 3위가 일종의 '평행이론'을 성립했다는 것입니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 이를 대입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브라질이 3위를 할 경우 독일이 우승하고, 네덜란드가 3위에 오르면 아르헨티나가 우승한다는 식인데요. 그 근거를 시간 역순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제19회 2010년 남아공월드컵 = 우승 스페인, 준우승 네덜란드, 3위 독일, 4위 우루과이 순서를 기록했습니다. 이 대회에서 우승국 스페인은 준결승 4강전에서 '독일'에 승리했지요.

♣제18회 2006년 독일월드컵 = 우승 이탈리아, 준우승 프랑스, 3위 독일, 4위 포르투갈입니다. 그 때 우승한 이탈리아는 4강전에서 '독일'을 이겼습니다.

♣제17회 2002년 한일월드컵 = 우승 브라질, 준우승 독일, 3위 터키, 4위 대한민국 순입니다. 당시 우승국 브라질은 4강전에서 '터키'를 누르고 결승에 나갔지요.

♣제16회 1998년 프랑스 월드컵 = 우승 프랑스, 준우승 브라질, 3위 크로아티아, 4위 네덜란드입니다. 이 대회에서 우승한 프랑스는 4강전에서 '크로아티아'를 눌렀습니다.

♣제15회 1994년 미국 월드컵 = 우승 브라질, 준우승 이탈리아, 3위 스웨덴, 4위 불가리아 입니다. 대회 우승국인 브라질은 4강전에서 '스웨덴'을 꺾었습니다.

때문에 "이번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1위와 3위가 평행이론을 성립하는 일이 지속될까?"에 궁금증이 더해집니다.

그러나 결과가 이들과 다른 사례가 바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입니다. 이색적이게도 1990년 대회 결승전 격돌 상대는 이번 월드컵과 똑같습니다.

♣제14회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 우승 서독, 준우승 아르헨티나, 3위 이탈리아, 4위 잉글랜드입니다. 이 대회에서 3위를 한 이탈리아를 4강전 준결승에서 꺾은 주인공은 앞서 5개 월드컵과 달리 ‘준우승’에서 머문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였습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 1, 3위의 평행이론이 항상 성립하는 건 아니란 분석입니다. 이는 또 최강 전차군단 독일 축구 대표팀에 ‘예외는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비춰집니다. 이번에도 과연 그럴까?

한경닷컴 뉴스국 윤진식 편집위원 js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