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나라 때 그려진 인티 부부 초상화(18세기). 남편의 얼굴이 사실적인데 비해 부인의 얼굴은 스테레오타이프화돼 있다.
중국 청나라 때 그려진 인티 부부 초상화(18세기). 남편의 얼굴이 사실적인데 비해 부인의 얼굴은 스테레오타이프화돼 있다.
요즘 한·중·일 세 나라의 대립 양상을 보면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사사건건 부딪치며 극한 대치로 치닫고 있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양보할 수 없다며 주변 해상에서 무력시위를 벌이는 중국, 오랜 국내 경기 침체 등으로 쌓인 내부 불만을 한국·중국과의 대치를 통해 호도하려는 일본, 그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는 한국. 참 달라도 너무 다른 세 나라다.

오늘의 이런 나라별 성향은 과거 역사 속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은 국력이 강해지면 늘 영토 확장에 팔을 걷어붙였다. 한나라, 당나라가 그랬고 청나라도 그랬다. 일본은 또 어떤가. 국내에서 모순이 일어나면 항상 외부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분열된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영주들의 논공행상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고 오랜 내란으로 강성해진 그들의 군사력을 소진시키기 위해 대륙 침략을 감행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의 대륙 침략과정에서도 내부 모순의 외부 해결이라는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

이처럼 서로 다른 세 나라의 성향은 미술 속에서도 확연히 나타난다. 그 차이가 가장 뚜렷이 드러나는 장르는 초상화다. 그중에서도 부부 초상화는 아주 흥미로운 예다. 부부 초상화는 조상숭배신앙을 바탕으로 제작된 일종의 제의 예술이다.

먼저 중국부터 살펴보자. 중국에서 부부 초상은 항상 남편과 부인의 초상이 함께 제작됐다. 그중 상당수는 한 폭에 함께 그려졌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남녀유별이라는 유가적 덕목이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를 강하게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 화사가 외간 여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결국 중국인들은 묘책을 짜냈다. 남자 초상화는 사실적으로 그리되 여성 초상은 스테레오타이프화된 모습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명청대 부부 초상화 속 여성의 어색한 느낌은 그 때문이다. 부부유별도 중요했지만 중국인들이 무엇보다 중시한 음양의 조화라는 덕목 또한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어떤가.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양반 귀족사회에서 부부 초상화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공민왕과 그의 부인 노국대장공주를 그린 초상, 박연 부부 초상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준다. 그러나 조선 중기로 넘어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성리학적 이념이 일상생활 깊숙이 침투하면서 사회생활을 규제하는 절대적 가치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남자 화사가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럼 중국처럼 스테레오타이프화된 대체 초상을 배치할 만도 한데 조선은 그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유가의 남존여비 관념이 도가적인 음양의 조화관을 압도했다. 사당에는 오로지 가부장의 초상화만 걸릴 수 있었다. 조선시대 여성 초상화가 전무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심지어 왕비 초상화조차 제작되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은 차이가 있으면서도 유가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끈으로 연결돼 있지만 일본은 완전히 다르다. 일본인들 사이에는 고대부터 초상화는 타인의 저주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고 해서 자신의 얼굴이 그려지는 것을 극도로 기피했다. 설사 그린다고 해도 똑같이 그려서는 안 되고 ‘닮음과 닮지 않음의 사이’에 머물러야 했다. 어렴풋이 주인공을 짐작할 수 있는 정도로 그려야 훌륭한 초상화였다. 이 점은 남 앞에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일본인의 성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극소수의 예외가 있긴 하지만 부부 초상화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초상화는 한 사람씩 따로 그리는 게 관례였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여러 학자들이 지적했듯이 일본인은 대상을 고립적으로 파악하는 독특한 전통을 갖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철학자 미나모토 료엔에 따르면 일본인이 주변 대상을 통합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네덜란드를 통해 ‘자연(nature)’이라는 개념을 접하고 나서부터였다고 한다.

그림 속에 나타난 동아시아 3국은 서로 화합하기 어려운 세계관과 가치관으로 직조돼 있다. 세 나라의 정치적 충돌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실타래처럼 얽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알고 보면 그림 속에 있다. 부부 초상화는 하나의 단적인 예일 뿐이다.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