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 HG220
그랜저 HG220
‘수입 디젤차 전성시대.’

자동차에 관심이 많지 않은 분들도 이 말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수입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고, 선봉장에는 독일 디젤차가 있다는 것이죠. 실제로 최근 판매되는 수입차의 70%가 디젤엔진 차량입니다.

국산차 시장으로 시선을 돌리면 상황이 사뭇 다릅니다. 국산차는 아직 ‘세단은 가솔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디젤’이라는 인식이 강하죠. 올해 1분기에 국내에서 판매된 전체 승용차 가운데 디젤 차량 점유율은 36%입니다. SUV를 빼면 점유율은 15%로 내려갑니다.

이런 국산차 시장에서도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디젤 세단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디젤과 가솔린 사이에서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현대자동차와 BMW, 메르세데스 벤츠, 아우디 등 네 개 브랜드 준대형 세단의 가솔린과 디젤 모델 판매량을 분석해 봤습니다.

디젤 차량은 같은 배기량의 가솔린 모델에 비해 강한 가속력(토크)을 갖고 있으며 연비도 30%가량 좋습니다. 하지만 출력이 낮고 소음과 진동이 크다는 단점이 있죠. 승차감을 중요시하는 세단에는 디젤이 적합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수입차 시장에선 BMW 520d나 메르세데스 벤츠 E220 CDI 같은 디젤 엔진을 장착한 세단들의 인기가 높습니다.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디젤모델 점유율이 55%에 달하는 유럽 시장에서 갈고 닦은 실력으로 단점을 보완했기 때문이죠. 이는 국내 소비자들이 디젤 세단을 보는 시선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역할을 했습니다.
힘좋은 디젤車의 '힘겨루기'
현대차가 수입차에 뺏긴 시장을 되찾기 위해 국내 첫 준대형 디젤 세단을 준비했습니다. 2015년형 그랜저 HG220이 그 주인공이죠. 차량 공개 후 현재까지의 상황은 긍정적입니다. 지난 9일 사전 예약 판매를 시작한 후 20일까지 들어온 전체 예약 대수 중 디젤 모델 비중이 36.4%에 달합니다. 현대차가 당초 예상한 15%보다 두 배 이상 많습니다.

그랜저 HG220은 디젤엔진 모델임에도 높은 출력을 갖고 있는 게 강점입니다. 싼타페, 맥스크루즈 등 중형 SUV에 들어가는 2.2L R엔진을 개량한 R2.2 E-VGT 클린디젤 엔진은 최고 출력이 202마력으로, 가솔린인 HG240(190마력)보다 힘이 더 좋습니다. 경쟁 차량인 BMW 520d(184마력)나 벤츠 E220 CDI(170마력)보다도 뛰어납니다. 다만 연비는 14㎞/L로 16㎞/L가 넘는 독일 경쟁 차종에 비해 떨어집니다.

BMW 뉴5시리즈
BMW 뉴5시리즈
이제 독일차를 살펴볼까요. BMW 520d는 올해 5월까지 누적 판매량 3152대로 수입차 베스트셀링카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4륜구동 모델인 520d X드라이브까지 합치면 4648대로 BMW 5시리즈 전체 판매량의 70%에 달합니다. 가솔린 모델인 528i보다 2.5배 정도 더 팔렸습니다. 판매량 차이가 이렇게 큰 것은 520d(6330만~7390만원)의 가격이 528i(6820만~7820만원)보다 낮은 것, 그리고 16.9㎞/L에 달하는 디젤 모델의 높은 연비가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벤츠 E클래스
벤츠 E클래스
벤츠의 효자 모델인 E220 CDI는 올해 4륜구동 모델인 4MATIC를 합해 4236대가 판매됐습니다. 가솔린 모델인 E300은 1659대로 선호도 분포가 BMW 디젤·가솔린 비율과 비슷합니다. 지난해 E클래스는 E220 CDI가 6495대, E300이 5591대로 디젤과 가솔린 판매량이 비슷했지만 올 들어 디젤 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리는 분위기입니다.

아우디 A6
아우디 A6
아우디의 경쟁 차종은 A6 3.0 TDI 콰트로(디젤)와 TFSI 콰트로(가솔린)입니다. 콰트로는 4륜구동이란 의미죠. 아우디는 두 모델의 차값을 똑같이 7390만원으로 책정했습니다. 그 덕인지 작년 판매량은 다른 업체들처럼 디젤이 가솔린보다 2.5배가량 많았는데 올해는 A6 3.0 TDI가 2093대로 369대 팔린 TFSI를 크게 앞서고 있습니다.

벤츠와 아우디를 보면 소비자 선호도가 디젤로 더 이동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현대차가 그랜저 디젤을 내놓아야 했던 이유입니다. 올 하반기에는 그랜저 디젤이 얼마나 수입 디젤 세단의 상승세를 저지했는지 판명날 겁니다. 흥미로운 구경거리입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