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14세의 명으로 17세기에 지어진 프랑스 베르사유궁전과 그 정원은 건축과 미술의 유기적인 통합이라는 서구의 전통을 잘 보여준다. 정석범 기자
루이14세의 명으로 17세기에 지어진 프랑스 베르사유궁전과 그 정원은 건축과 미술의 유기적인 통합이라는 서구의 전통을 잘 보여준다. 정석범 기자
유럽이나 미주로 미술사나 미술이론을 공부하러 간 사람들은 건축이 미술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한국에서 미술과 건축은 별개의 영역으로 간주돼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서양의 미술사 개설서는 대부분 건축으로 시작하고 조각, 회화 등은 그 다음에 언급되는 데 비해 한국에서 건축은 건축공학과나 건축학과에서 가르치고 미술 관련 학과에서는 회화, 조각, 공예 등 미술 장르중심으로 가르치는 게 현실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문화적 차이가 있다.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회화, 조각, 공예품을 건축을 장식하는 부수적 요소로 간주했다. 건축가는 어느 벽에 그림이 들어가고 어느 자리에 조각이 배치되는지 염두에 두면서 건물을 설계한다. 당연히 건물 착공과 동시에 작가에게 회화와 조각 작품을 주문한다. 이탈리아 북부 해안도시 파도바의 아레나 성당을 예로 들어보자. 1305년 완공된 이 성당은 중세 말의 위대한 화가 조토(1266~1337)가 그린 벽화로 유명하다. 연구에 따르면 이 성당의 건축가(조토 자신이었다는 설도 있다)는 설계 초기부터 그림이 그려질 공간을 미리 확보했다는 것이다.

이런 그림과 건축의 일체화 현상은 르네상스 시대(15~16세기 중반) 이후에 가속화돼 바로크 시대(16세기 말~18세기 초)에 절정을 이룬다. 화가들은 교회당은 물론 귀족 저택의 천장과 벽을 현실공간과 연결된 것처럼 묘사했다. 안드레아 포초 같은 로마 화가들은 교회당 천장이 천국과 연결된 것처럼 환영을 만들어냈다. 한편으로 르네상스 이후에는 벽화 대신 액자로 장식된 그림이 벽화를 대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경우도 건물 설계 단계에서부터 주문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조각도 그렇다. 건물 로비나 복도를 장식하기 위해 제작되는 건물의 유기적 구성요소다. 때로는 조각을 건물 외벽이나 지붕에 직접적으로 결합시키기도 한다.

건축과 관련해 우리에게 낯선 또 한 가지는 서양에서는 정원을 건축의 범주에 포함시킨다는 사실이다. 건물이 불변의 건축인 데 비해 정원은 가변적인 건축이다. 서양 건물은 석재로 짓기 때문에 한 번 완공하고 나면 사실상 증개축이 어렵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나중에 건물주가 정원을 통해 변화를 줄 수 있게끔 배려했다. 서양에서 정원을 녹색 건축, 가변적 건축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정원을 농과대학의 조경학과에서 다루는 우리네와는 사뭇 다르다. 물론 여기에는 정원을 기하학적이고 구축적으로 접근하는 서양 정원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서양과는 대조적으로 동양에서는 건축과 미술을 별개로 여겼다. 종교 건축물과 궁궐 건축을 제외한 일반 건축물, 특히 유가의 건축물은 검소하고 소박한 기풍을 중시했기 때문에 집안 내부를 그림과 조각으로 요란하게 치장하지 않았다. 장식용보다는 집안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벽사용 그림과 글씨를 집 안팎에 계절마다 한시적으로 붙였다.

감상용 그림은 벽에 걸기보다는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보는 게 우리네 문화였다. 현재 전해오는 그림들이 대부분 족자나 두루마리 형태인 이유는 평소 이것을 상자 같은 곳에 보관했다가 보고 싶을 때 꺼내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화집의 형식을 띤 화첩본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억누르기 어려운 미에 대한 욕구는 문방사우 쪽으로 전이돼 독특한 팬시문구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건물을 치장하지 않다 보니 서양에 비해 미술과 건축의 유기적 상관관계는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에서 건축과 미술이 각자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서구적 삶과 건축이 우리네 일상을 지배한 지 한 세기가 흘렀다. 건축-미술 ‘한 몸 문화권’에 편입된 것이다. 대부분의 도시민은 그림과 조각으로 치장된 건물 속에서 하루를 보낸다. 삶과 미술의 친화 관계는 갈수록 가속화해 건축과 미술의 상호 침투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조각 같은 외관을 가진 빌딩, 건축 같은 조각 작품은 너무도 흔해 더 이상 화젯거리도 아니다. 주어진 공간에 맞게 설치 작품을 제작하는 장소특정적(site-specific) 미술도 그런 현상의 일부다.

[CEO를 위한 미술산책] 건축과 미술 '한몸' vs '별개'…동서양 시각差, 서로 다른 장르 낳아
이제 미술과 건축을 가르는 유일한 기준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기능성을 띠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뿐이다. 주거용, 사무용, 레저용 등 말이다. 다행인 것은 그런 상호침투현상이 인류가 오랫동안 꿈꿔온 ‘예술적인 삶’이라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너무 낙관적인가.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