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의 해외 분쟁에서 국내 법무법인(로펌)의 중개 기능을 신뢰할 수 없다.”

국내 주요 로펌이 해외로 진출하는 대기업 사건을 맡기 시작했다는 본지 기사(6월4일자 A23면)에 대해 10대 그룹 관계자가 한 말이다. 해외에서 벌어지는 1조원대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국내 로펌들이 속속 참여하고 있지만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는 지적이었다.

이 관계자는 국내 로펌이 외국 변호사의 숫자 늘리기가 아니라 수준 높은 외국 변호사 영입 등 질적 성장을 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 등에서 변호사 자격증만 취득하고 바로 국내 로펌에 들어온 변호사의 송무 능력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복잡한 미국법의 증거 개시 절차 등 실무 소송 능력이 기업 입장에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4대 그룹 법무실의 한 변호사는 “10대 그룹은 대부분 법무팀의 30% 내외가 미국 등 외국 변호사”라며 “국내 로펌 없이도 충분히 미국 등 글로벌 로펌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현대차그룹은 100명 규모의 법무팀에 30명 정도가 외국 변호사다. LG, SK 등 주요 기업도 비슷하다. 외국 변호사 숫자만 따질 경우 국내 로펌에 뒤질 게 없다는 얘기다. 또 다른 4대 그룹 관계자는 “투명하고 합리적인 법률 소송 비용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로펌과 함께 해외 로펌을 선임한 경우와 해외 로펌만 선임한 경우를 보니 후자가 비용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싸다는 것이다.

반면 국내 로펌들은 “10대 그룹이 지나치게 해외 로펌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 로펌도 충분히 실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국내 로펌과 손잡는 게 소송 진행에 유리한데도 국내 로펌을 배제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지난해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법률 서비스 분야 무역수지 적자는 역대 최고치인 7억달러(약 7500억원)를 넘어섰다. 2007년에 비해 5배 넘게 늘었다. 적자 규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국내 로펌과 대기업 간의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배석준 지식사회부 기자 eul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