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밤 10시30분(한국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제103차 국제노동기구(ILO) 총회 본회의가 열렸다. 이번 총회의 주제는 외국인 이주 근로자와 관련한 각국의 제도와 현황을 다루는 ‘공정한 이주’다. 기조연설에 나선 정현옥 고용노동부 차관은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한국의 고용허가제는 2010년 ILO로부터 아시아의 선도적인 이주관리 시스템으로 평가받았고 2011년에는 유엔으로부터 공공행정 대상을 수상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뒤이어 단상에 오른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같은 주제를 놓고 전혀 다른 발언을 했다. 신 위원장은 “한국의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며 “코리안드림을 좇아온 이주근로자들이 저임금 장시간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고, 산업재해율도 높다”고 비판했다.
안방도 모자라…밖에서도 새는 '勞·政 갈등'
1919년 설립된 ILO는 현재 185개 회원국을 두고 있는 유엔 산하 전문기관이다. 우리나라는 1991년에 가입했다. 총회에 참석한 각국 노·사·정 대표단은 한국의 정부 대표와 노동계 대표의 상반된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물론 ILO 총회는 각국의 노동 현실을 듣고 그에 따른 협약을 맺거나 개선 권고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수년째 제대로 된 대화 테이블을 꾸리지 못하고 있는 노동계와 정부가 멀리 이국 땅에서 만나 설전을 벌이는 것을 두고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안방’에서의 노·정 갈등이 국제적으로 ‘구설’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5년 8월에는 노·정 갈등을 이유로 10월에 열릴 예정이던 부산 ILO 아시아태평양 총회가 전격 연기됐고, 이듬해 8월에 가까스로 열린 총회에서는 이상수 당시 노동부 장관의 ‘노사관계 로드맵 입법예고 계획’ 발언에 한국노총이 반발하며 총회장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다. 2009년 제네바에서 열린 ILO 총회장에는 하얀 소복이 등장했다. 당시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기조연설을 하는 도중에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이 소복 차림으로 나타나 “비정규직 탄압하는 한국 정부”라고 외쳤던 것. 지난해 ILO 총회에서도 예상치 못한 ‘참사’가 있었다. 방하남 고용부 장관이 연설을 시작하자 단상 바로 아래에 민주노총 대표단 6명이 등장했다. 이들은 ‘liar(거짓말쟁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치고는 “liar”를 세 번 외치다 끌려나갔고, 얼굴이 붉어진 방 장관의 사진이 국내외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노동계 입장에서 ILO 총회는 이슈를 국제적으로 공론화하고, 이를 통해 정부가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압박하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대화에 소극적이면서 국제무대에서만 이같이 행동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노동계 입장에서는 국내에서 문제 해결이 어렵다 보니 ILO 총회를 활용하는 것”이라면서도 “정부나 노동계나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이런 식으로 내보이기보다는 안방에서 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