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시스템 교체로 촉발된 국민은행의 내분이 파행으로 점철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다섯 시간의 마라톤 이사회가 열렸지만 타협안이 나오기는커녕 은행 경영진과 감사, 사외이사들 간 갈등의 골이 더 깊어졌다. 이날 이사회에서 고성이 오가는 등 양측의 감정 대립이 격화돼 파행경영의 장기화가 불가피해졌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도 역할을 하지 못하는 리더십의 공백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자체적인 사태 수습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이번주말까지 서둘러 검사를 마무리한다는 입장을 정했다. 결국 외부의 힘에 의한 강제 해결의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고성, 욕설, 퇴장…‘파행’ 치달아

국민은행은 지난달 30일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 5시간 동안 김중웅 의장의 사회로 이사회를 열고 해법을 모색했지만 사실상 아무 소득도 얻지 못했다.

이사회에 앞서 이 행장이 임원들과 함께 연 경영협의회에서는 기존 IBM 시스템을 유닉스체제로 교체키로 한 이사회의 결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유닉스 사업자 선정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IBM으로부터 새 제안을 받아본 뒤 더 유리한 쪽을 선택하자는 절충안이었지만 이사회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사외이사들은 이 행장의 이 요구안을 거부했다. 다만 금감원의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유닉스로 전환하는 절차 진행을 잠정 보류하는 양보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처음 문제를 제기했던 정병기 국민은행 감사는 전산교체 결정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을 먼저 풀어야 한다는 주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사외이사들을 정조준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 감사와 사외이사 간 감정대립이 격해져 회의장 책상을 두들기며 고성이 오갔다.

급기야 이 행장이 이사회 중간에 사외이사들과 1시간 넘게 별도회의를 열기도 했지만 중재안 도출에 실패했다. 다시 모여서 속개된 이사회 막판에는 욕설과 함께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는 사람이 나올 만큼 양측의 대립이 극한으로 치달았다는 후문이다.

○리더십 공백…금감원 검사 주목

국민은행은 심각한 리더십 부재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사회의 과반을 차지하는 사외이사, 은행 경영진, 감사 간 감정의 골이 깊어져 정상적인 이사회 운영마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사태를 보는 시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보니 중재에 나선 이 행장도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KB금융그룹 수장인 임영록 회장의 소극적인 자세가 리더십의 공백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임 회장은 “은행에서 벌어진 일은 은행 경영진이 슬기롭게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견지하며 개입을 꺼리고 있다.

결국 공은 특별검사 중인 금감원의 손으로 넘어갔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사회 후 “은행의 내부 통제 문제가 심각한 상황임이 드러났다”며 “최대한 서둘러 제재절차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특별 검사를 이달 5일까지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결국 잘못이 큰 것으로 판명되는 쪽이 치명타를 입고, 은행과 지주 경영진, 사외이사들이 무더기 제재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닉스 체제로의 전환이 물 건너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시간이 지체되면 내년 7월 계약이 만료되는 IBM과 재계약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진단이다.

김일규/박종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