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맥주회사 사브밀러는 지난 3월 끝난 2013회계연도에 4억달러에 달하는 환차손을 봤다. 호주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콜롬비아, 페루 등 신흥국 통화 약세로 수출 채산성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영국 유아용품 제조업체 마더케어도 러시아 루블화 등 주요 수출시장 통화가치가 급락하면서 매출의 60%에 달하는 해외 매출이 크게 줄었다.

이들뿐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니레버, 프록터앤드갬블(P&G) 등 소매업체에서부터 롤스로이스 등 제조업체까지 다국적 기업들이 환율변동성 확대 때문에 타격을 입고 있다고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신흥시장에 베팅했던 다국적 기업이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다수의 다국적 기업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시장이 위축되자 이를 상쇄하기 위해 신흥국 공략을 강화했다.

환율 변동에 따른 실적 타격은 유럽에 기반을 둔 기업에서 두드러진다. 유로화와 영국 파운드화에 대한 신흥국 통화가치가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신흥국 통화가치는 유로화 대비 7~38% 하락했다. 남아공 랜드화는 12%, 브라질 헤알화는 13%, 중국 위안화는 7%, 인도 루피화는 10%, 러시아 루블화는 13%, 아르헨티나 페소화는 38% 떨어졌다. FT에 따르면 영국·유럽계 다국적 기업인 유니레버는 환율 영향으로 올 1분기 매출이 8.9%가량 줄었다. 프랑스기업 다농도 8.9%, 스위스기업 네슬레는 8.6%가량 매출이 감소했다.

패브리스 파머리 BNP파리바 유럽외환담당 책임자는 “신흥시장 통화는 보통 경기에 따라 빠르게 변한다”며 “만약 통화가치 변동에 따라 제품 가격을 급속히 바꾸지 못한다면 기업이 환헤지(위험회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신흥국 통화는 선진국 통화보다 헤지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환율 변동폭이 큰 데다 선진국과 달리 충분한 파생상품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기업의 환변동 리스크 헤지를 원하지 않는 주주들도 있다. 이미 환율 움직임을 감안해 투자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블룸 HSBC 통화 전략가는 “만약 금 회사의 주식을 샀다면 (금 가격의 움직임에 베팅한 것이기 때문에) 회사가 금값 변동 리스크를 헤지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지역에 수출을 많이 하는 기업의 주식을 샀다면 그 지역 통화가치 변동도 감안해 투자하는 것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화가치 움직임은 그 나라의 경기 사이클을 반영하기 때문에 환변동 헤지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틴 오도너번 영국 기업재무관리자협회 정책 부국장은 “헤지하는 것은 단지 시간만 벌어줄 뿐”이라며 “만약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추세가 있다면 사업적인 측면에서 수출 비중 조절 여부 등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