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들이 100조원에 육박하는 퇴직연금 시장을 놓고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금융협회들은 한 곳도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투자협회 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등 4대 금융협회 노사는 기존 퇴직금 제도를 퇴직연금으로 전환하려는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퇴직연금 사업자는 증권사 은행 보험사 등 46개 금융사다. 금투협회 소속이 HMC·미래에셋증권 등 13곳, 은행연합회 소속이 신한·국민은행 등 14곳, 생보협회 소속이 삼성·교보생명 등 13곳, 손보협회 소속이 LIG·롯데손보 등 6곳이다.

소속 금융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금융협회들이 퇴직연금 도입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선택의 어려움’ 때문이란 설명이다. A협회 임원은 “퇴직연금 영업이 치열한 상황에서 특정 금융회사를 선택하면 원치 않은 논란을 부를 수 있다”며 “임직원 수가 200~300명에 불과한데 10개 넘는 사업자를 선정할 수도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재원 마련도 쉽지 않은 문제다. B협회 관계자는 “기존 퇴직금 제도는 장부상에만 퇴직급여를 기록하면 되지만 퇴직연금으로 전환하면 당장 수십억원의 재원을 마련해 외부 금융회사에 맡겨야 한다”며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부 금융사들은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기업들의 퇴직연금 전환에 앞장서야 할 금융협회에서 안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 금융사 대표는 “회원사들이 퇴직연금 가입자를 한 명이라도 늘리기 위해 사활을 걸고 영업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