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식 인하대 의대 교수 "변비땐 대장암 검사?…확률 잘못 해석한 것"
지난해 9월 대한대장항문학회는 “여성과 고령의 대장암 환자에게 변비가 나타난 사례가 많았다”며 “변비가 심한 60세 이상 성인은 반드시 대장내시경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발표했다. 전국 24개 대학병원에서 대장암 수술을 받은 1만7415명의 환자 7명 중 1명이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변비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는 통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다. 황승식 인하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조건부 확률을 잘못 이해한 대표적인 사례”라며 “제대로 확률을 계산할 경우 변비가 있는 사람 중 대장암이 있을 확률은 극히 낮다”고 말했다.

제대로 확률을 계산하는 방법은 이렇다. 한국 남성의 대장암 유병률은 0.3%다. 1000명 중 3명이 대장암 진단을 받는다는 말이다. 이때 3명 중 1명만 변비가 있어도 대장암 환자 중 변비가 있을 확률은 33%가 된다. 대장암으로 진단을 받지 않은 나머지 997명 중에서도 똑같이 3분의 1이 변비를 겪는다면 그 수는 299명이다. 즉 변비를 겪는 300명 중 단 1명(0.3%)만 대장암 진단을 받는다는 얘기다.

황 교수는 “많은 의사들이 통계에 무지한 탓에 과학적 근거가 약한 의학 연구들을 빈번하게 발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국립암센터 암역학연구부와 질병관리본부 만성병조사과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통계를 통해 의학연구를 평가하는 데 있어 국내에서 가장 앞선 연구자로 꼽힌다.

○퍼센트로 부풀려진 개선 효과

황 교수는 “확률이란 개념이 인류 역사에 등장한 것은 200년밖에 되지 않았다”며 “의사뿐 아니라 환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확률과 통계는 쉽지 않은 개념”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로 날씨를 들었다.

그는 “내일 비 올 확률이 30%라는 건 내일과 같은 기상 조건일 때 열흘 중 사흘은 비가 왔다는 의미”라며 “어려운 확률을 이처럼 쉽게 풀어주는 게 의학에서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스타틴’ 계열의 약들이 뇌졸중을 50% 줄여준다는 광고를 할 때 상당한 효과를 지닌 것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황 교수는 “실제 의미는 약을 안 먹으면 100명 중 20명에서 뇌졸중이 나타날 것을 100명 중 10명으로 줄여준다는 것”이라며 “의사나 제약회사들은 환자들에게 치료 효과를 퍼센트로만 알려줄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감소 수치도 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방암 검사도 마찬가지다. 정기적인 유방 촬영술이 유방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20% 감소시켜준다고 할 때 실제 의미는 1000명 중 5명이 사망하는 것을 1000명 중 4명으로 줄여준다는 뜻이다. 황 교수는 “5명이 4명으로 감소한 것을 두고 20%(5분의 1) 개선 효과를 냈다고 하지만 사실은 유방암 검진을 꾸준히 받건 안 받건 위험을 줄여주는 효과는 미미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불필요한 검사·치료 알려야

치료 효과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국민 건강 증진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황 교수는 강조했다. 실제로는 효과가 크지 않은 약이나 치료에 헛돈을 쓰지 않아도 되고, 불필요한 검사 과정에서 오히려 부작용이 더 커지는 문제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에서 과잉진단으로 이슈가 된 갑상샘암이 좋은 예다. 갑상샘암은 생존율이 워낙 높기 때문에 수술을 받으나 안 받으나 큰 차이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는 “의사 입장에서는 괜히 나뒀다 만약에 악화될 경우에 책임이 자기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수술을 권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부분에 있어선 독립적인 공공기관에서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예방의학전문위원회(PSTF)는 나이에 따라 어떤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는지, 어떤 질병에 대해선 어떤 수준의 치료가 권장되는지를 정해놓고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