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력평가는 ‘구매력으로 봤을 때 동일한 가치’란 의미로, 각기 다른 나라의 화폐가치를 그 화폐의 구매력, 즉 똑같은 재화나 서비스를 사는 데 얼마만큼의 돈이 드는가를 기준으로 비교한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는 주기적으로 ‘빅맥지수’를 발표한다. 맥도날드 대표 메뉴인 ‘빅맥’의 여러 나라 가격을 비교해 일종의 환율을 구한 것이다. 2014년 1월 현재 한국의 빅맥 가격은 3700원, 미국은 4.62달러였다고 한다. 즉, 구매력으로 봤을 때 우리 돈 3700원이 4.62달러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비율을 적용하면 1달러에 상응하는 우리 돈은 801원 정도다. 1달러의 원화 구매력평가가 801원인 것이다.
외환시장에서 바로 환율을 알 수 있는데 왜 복잡하게 구매력평가를 계산하는 것일까. 우리가 접하는 환율은 외환시장에서 각국 화폐가 거래되는 비율로, 화폐들의 그때그때 수요 및 공급 상황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시시각각 변동한다. 그러나 각 나라의 화폐로 살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의 양은 극심한 인플레이션 상황이 아니라면 크게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화폐를 갖는 궁극적인 목적이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이므로 구매력으로 화폐의 가치를 재야 각국의 진정한 경제상황을 비교할 수 있고, 외환시장의 환율이 결국 구매력평가를 따라갈 것이라는 이론적 배경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환율과 구매력평가에 차이가 있고, 그 차이는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빅맥지수를 놓고 보면 1달러의 원화 구매력평가는 801원이지만 당시 외환시장의 환율은 달러당 1067원이었다. 즉, 구매력으로 따지면 801원과 같은 1달러를 1067원에 사야 하니 외환시장에서 원화가 낮게 평가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나라의 화폐가 구매력이 높고 외환시장에서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소득이 낮은 나라에서 더 싼 편이라는 것이다. 가격이 싸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화폐의 구매력이 높다는 뜻이다. 재화는 운송비나 관세 때문에 물가가 싼 곳의 재화가 그 가격 그대로 비싼 곳으로 옮겨지기 어렵고, 서비스는 수출 자체가 어려워 화폐의 구매력 차이가 유지되는 것이다.
외환시장의 환율이 아닌 구매력평가를 적용하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11년에 이미 3만달러에 가깝다. 전체 GDP 규모도 환율을 적용했을 때는 14위였던 것이 12위로 다소 오른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회의가 드는 요즘이다.
민세진 < 동국대 경제학 교수 sejinmin@dongguk.ed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