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씨 "성적욕망 대신 불완전한 사랑 다뤘어요"
소설가 박범신 씨(68·사진)는 말 그대로 ‘내일모레’ 칠순이다. 그래도 여전히 ‘청년 작가’로 불린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별명이지만 그의 글만으로는 현실의 나이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2008년에 낸 장편《촐라체》(푸른숲)에서는 크레바스에 빠져 조난당한 젊은 산악인들의 가슴 아픈 동료애를 거친 호흡으로 담았고, 2010년 나온 장편《은교》(문학동네)에선 열일곱 소녀와 사랑에 빠진 노(老)시인을 바라보는 젊은 제자의 불타는 눈을 그렸다.

박범신 씨 "성적욕망 대신 불완전한 사랑 다뤘어요"
최근 발표한 장편《소소한 풍경》(자음과모음)에서도 젊은 필체는 그대로다. 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익숙한 서사 방식을 피해서 쓴 것은 아직도 내가 젊다는 뜻일 것”이라며 “아직도 문예반 같은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소소한 풍경》은 일반적 서사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첫 번째 화자인 노작가는 옛날에 가르쳤던 제자 ㄱ으로부터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를 본 적이 있느냐”는 전화를 받는다. 이후 ㄱ이 겪은 이야기가 그녀의 입으로 시작된다.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지내는 ㄱ은 어느 날 더플백 하나만 메고 온 남자 ㄴ을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한다. 얼마 후 탈북 여성 ㄷ도 우연히 함께 살게 된다. 남자 하나와 여자 둘. ㄱ과 ㄴ, ㄱ과 ㄷ, ㄴ과 ㄷ, 아니면 모두 같이. 그들은 ‘덩어리’가 돼 함께 지낸다.

통속적 삼각관계는 아니다. 어느 땐 이어지고 어느 땐 떨어진 ‘삼점 관계’로 불릴 수 있다. 박씨는 “플롯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며 “소설 속 주인공들은 성(性)에 대한 욕망을 떠나 유리그릇 같은 사랑의 불완전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복도훈 씨는 “전작《은교》에서 시인 이적요가 꿈꾸었지만 실행하지 못했던, 즉 결핍됐던 완전범죄를 새롭게 꿈꾸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고 평했다. 작가의 말에서 “생의 어느 작은 틈은 여전히 검푸른 어둠에 싸여 있다”고 했던 박씨는 “앞으로 쓰게 될 소설도 생의 비밀을 다루게 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 360쪽, 1만3500원.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