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뒤숭숭한 관가 > 정홍원 국무총리가 ‘세월호 참사’에 책임지고 사의를 밝힘에 따라 개각의 폭과 시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28일 오전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 뒤숭숭한 관가 > 정홍원 국무총리가 ‘세월호 참사’에 책임지고 사의를 밝힘에 따라 개각의 폭과 시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28일 오전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개조 첫 단추…'官피아'부터 수술하라] 공무원 임용령 비웃는 그들만의 1년짜리 '돌려막기 인사'
#1. 환경부에선 이달 중순 5명의 과장이 1년도 안돼 자리를 옮겼다. 특히 일부 과장은 이전 업무와 거의 상관없는 보직을 맡았다. 감사담당관이 환경보건관리과장으로, 토양지하수과장이 규제개혁법무담당관으로 이동하는 식이다. 이번 인사에서 자리가 바뀐 한 과장은 “인사라는 것이 상황에 따라 다른 것 아니냐”며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2. 산업통상자원부도 지난 2~3월 인사에서 3명의 국장이 1년을 못 채우고 다른 자리로 이동했다. 강성천 원전산업정책관이 산업정책관으로, 김학도 창의산업정책관이 FTA(자유무역협정)정책관으로, 채희봉 에너지수요관리정책단장이 에너지산업정책관으로 옮겨갔다. 산업부 인사팀 관계자는 “빈 자리가 생기는 등 어쩔 수 없는 인사 수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국장급 이상 53% 1년도 못채워

이들 부처뿐만이 아니다. 어느 부처를 막론하고 국·과장급은 1년 정도면 다른 자리로 인사가 나기 일쑤다. 경제부처를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도 지난 3월 전체 116개 과장급 직위 중 67명을 교체하면서 부서간 벽을 허문다는 취지로 같은 실·국에서 3년 이상 근무한 과장들을 대거 다른 실·국으로 내보냈다. 이에 따라 정책조정 업무를 다루던 과장이나 정통 세제맨이 예산실로 발령나거나 예산을 다루던 과장이 세제실로 이동하는 일이 벌어졌다. 일각에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엄밀히 따지면 이런 인사 관행은 공무원 인사 원칙과 맞지 않는다. 공무원 임용령은 잦은 인사 이동에 따른 전문성 하락을 막기 위해 일정 기간 내 공무원의 전보(동일직급 이동)를 제한하고 있다. 예컨대 국장급(고위공무원단)은 한 자리에 최소 1년 이상, 과장급(3,4급)은 1년6개월 이상, 사무관(5급) 이하는 2년 이상 머물러야 한다.

하지만 한국경제신문이 안전행정부의 ‘국가공무원 인사통계(2012년 기준)’를 활용해 일반직 국가공무원의 전보 현황을 분석한 결과 현실은 딴판이었다. 그 해 국장급 이상 고위공무원 전보 인사는 모두 415명. 이 중 90%가 한 부서에서 2년을 넘기지 못했고 규정과 달리 1년도 못 채운 고위직이 53.3%로 절반이 넘었다. 반면 5년 이상 장기 근무한 고위직은 불과 2명에 그쳤다.

잦은 교체로 FTA협상 그르치기도

과장급(3,4급)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부서에서 2년도 안돼 다른 부서로 발령난 공무원이 80.1%나 됐고 특히 1년도 못 채운 경우가 40%에 육박했다. 사무관(5급) 이하 공무원 중에서도 규정대로 2년을 넘겨 자리를 옮긴 공무원은 36.9%에 불과했다. 이런 현상은 기관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전보제한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 예외조항 탓이다. 이렇다보니 관료 사회 내에서조차 “일 좀 할 만하면 다른 곳으로 손들고 가버린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실제 이 같은 잦은 인사이동은 국익에 불리하게 돌아갈 때가 많다. 대표적인 분야가 통상이나 국제금융 같은 외국 관료들을 상대해야 하는 부서다. 2004년 한·칠레 FTA 협상 때 최종 합의 한 달 전에 우리측 담당 국장과 과장이 갑자기 다른 부서로 인사 발령이 나는 바람에 협상이 결렬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최근에도 국제협상에서 영어 실력은 뛰어나지만 통상 협상 경험이 짧은 모 간부가 상대편에게 “나 화났어(I’m angry)”라고 말하는 ‘외교적 실례’를 범해 협상 분위기가 싸늘해졌다는 일화가 통상 관료들 사이에 씁쓸하게 회자되고 있다.

순환보직 관행은 공무원들이 장기적 안목으로 일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특정 보직을 맡고 있는 1~2년 내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먼 미래의 문제보다는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일에 매달리는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임기 중(not in my term)에만 무사히 넘기면 된다’는 생각이 부지불식간에 공무원 사회에 퍼져 있다는 것이다.

주용석/김주완/심성미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