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포로 감시원으로 동원됐다가 전범이라는 멍에를 지고 사는 한국인이 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연합국이 주도한 재판에서 조선인 148명이 BC급 전범으로 분류됐고 이 가운데 23명이 사형됐다.

진주만 공격을 주도한 도조 히데키 등은 A급 전범 14명은 야스쿠니(靖國)신사에 합사돼 극우세력에게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데 반해 이들은 BC급 전범으로 낙인찍힌 삶을 살았다.

한국인 BC급 전범 모여 만든 동진회, '동진회를 응원하는 모임'에 따르면 살아남은 이들 가운데 2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도 있다.

이학래(89) 씨도 전범 중 한 명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포로감시원으로 태국에 끌려갔다가 전후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8개월간 사형수로 수용돼 있었다.

나중에 20년형으로 감형받았고 모두 11년가량 구금돼 있다가 1956년 10월 가석방됐다.

그는 한국인 전범이 일본이 강요한 전쟁의 피해자임을 인정받으려고 1991년 제소, 오랜 기간 법정에서 싸웠으나 승소하지 못했다.

그나마 1999년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이 한국인 전범이 '심각하고 막대한 희생, 손해를 봤다'며 문제를 해결할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고 판시했고 이씨 등은 시민단체와 힘을 모아 명예회복과 피해 배상을 촉구해 왔다.

2008년 일본 민주당 정권 때 이들에게 특별 교부금을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특정연합국재판 피구금자 등에 대한 특별급부금 지급에 관한 법률안'이 제출됐다.

그러나 이 법안은 심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현재 처형을 면한 한국인 전범 다수가 이미 사망했고 현재 일본에는 이씨 등 5명만이 생존해 있어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이들은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알리려고 작년 11월 서울에서 사진전을 열었고 이달 26일부터 도쿄도(東京都) 나카노(中野)구에 있는 전시·공연시설 '나카노제로'에서 한국인 전범 문제를 다룬 관련 사진을 모아 4일 일정으로 전시회를 시작했다.

동진회를 응원하는 모임에서 활동하는 오오야마 미사코(大山美佐子) 씨는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조선인이 끌려왔다가 전범이 됐다는 얘기를 듣고 운동을 시작했다"며 "국회 안에서만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사회 전체가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사진전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전시장에 나와 방문객에게 당시의 경험을 얘기하며 함께 나서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는 "이것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내 친구 23명이 사형을 당했다"며 불명예를 벗도록 평생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경닷컴 뉴스룸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