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가 양화 구축' 그레셤 법칙, 정부가 화폐 독점발행 때 성립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남편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애컬로프는 정보불균형이 시장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레몬시장’에 관한 논문을 1970년 발표했다. 중고차시장을 예로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중고차 구입자는 겉만 멀쩡한 중고차(레몬)를 비싼 값에 속아서 구매하게 되고 이후 시장에는 양질의 매물은 사라지고 낮은 품질의 중고차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이 논의를 화폐시장에 적용하면 자유로운 경쟁은 시장에서 양화가 사라지고 악화만 존재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여기서 양화는 과소평가된 화폐를, 악화는 과대평가된 화폐를 말하는데 사람들은 악화만 사용하고 양화는 보유하려고 한다. 이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토머스 그레셤(사진)의 ‘그레셤의 법칙’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경향은 일반적으로 화폐 공급에서 정부 독점의 필요성을 말해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하이에크에 따르면 그레셤의 법칙은 상이한 화폐 간 교환비율이 법에 의해, 즉 정부에 의해 강제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두 종류의 금화가 있다고 하자. 두 금화의 금 함유량은 차이가 있으나 액면가는 법에 의해 같을 경우 사람들은 지급수단으로 금 함유량이 더 낮은 금화를 사용할 것이다. 다른 금화는 녹여서 팔면 더 많은 이득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민간에서 공급하는 다양한 금화가 시장에서 유통되고 서로 다른 금화의 교환비율도 국가가 아닌 시장에서 결정된다면 그레셤의 법칙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레셤의 법칙은 정부의 간섭이 없는 화폐시장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발행하는 법화(法貨·legal tender)의 경우에 발생한다. 실제 미국에서는 1834년 이전에는 은화가 금화를 몰아냈고 그 이후에는 금화가 은화를 몰아냈다. 화폐 공급의 정부 독점을 그레셤의 법칙으로 합리화시킬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