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에 시달린 정조…생존 노하우는 '정성'
‘바뀐다. 온 정성을 다해 하나씩 베어 간다면 세상은 바뀐다.’

오는 30일 개봉하는 사극 영화 ‘역린’(감독 이재규·사진) 마지막 화면의 이 글귀는 주제를 대변해 준다. 개혁군주 정조가 어떻게 암살 위기를 극복하고 조선후기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는지. 군주가 신하를 어떻게 대해야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무엇이 중요한지.

바로 ‘정성’이 답이다. 정조가 성심껏 대한 인물은 암살자에서 보호자로 변한다. 하지만 양부의 막말에 상처 입은 궁녀는 수년간 꾸며온 암살 음모를 토설한다.

총제작비 100억원을 투입한 ‘역린’은 ‘정유역변’이라는 정조에 대한 역사적 암살 기도사건을 인간관계를 성찰하는 드라마로 풀어낸다. 자객과 친위대 간 대결신은 스케일이 크고 긴장감이 넘친다. 액션과 드라마가 무난하게 어우러진 노작이라 할 수 있다. 톱스타 현빈의 군 제대 후 복귀작이고, 명품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등을 연출한 이재규 PD의 영화 데뷔작이어서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등 근육이 발달한 정조(현빈)가 실내에서 책을 읽다가 팔굽혀펴기와 근력 기르기 운동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는 정조가 자신의 몸을 스스로 지켜낼 체력과 지력을 갖췄다는 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왕을 내시 상책(정재영)이 최측근에서 모신다. 한편 살수는 왕에 대한 암살 음모에 가담한 궁녀를 사랑하는 탓에 궁으로 잠입한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이도록 이끌었던 정순왕후(한지민)는 병권을 쥔 훈련대장(송영창)과 결탁해 정조를 공격하기 위한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정조의 생모 혜경궁 홍씨는 그런 정순왕후를 독살하려다 발각된다.

전형적인 사극 캐릭터와 다른 식의 인물 묘사가 볼거리다. 정조는 문약한 조선 왕과 달리 피트니스로 근육을 단련한다. 내시 상책은 시중드는 일에 그치지 않고 서고의 많은 책에 대한 내용과 위치를 꿰뚫고 있으며, 뛰어난 힘과 무술 실력도 갖췄다. 상책 역 정재영의 연기는 훌륭하다. 훈련대장의 교활하면서도 비트는 말솜씨는 문인을 능가할 정도다. 왕 앞에서 은근히 대들거나, 친위대장과 저열한 말싸움을 하는 연기 등은 인상적이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