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얼굴 없는 억만장자 사진작가로 활동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직접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붉은머리오목눈이 사진. 출처 아해 홈페이지(www.ahae.com)
해외에서 얼굴 없는 억만장자 사진작가로 활동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직접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붉은머리오목눈이 사진. 출처 아해 홈페이지(www.ahae.com)
세월호 선사의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73) 일가가 ‘붉은머리오목눈이’라는 딱새 이름을 딴 해외법인을 세우고 국내 계열사로부터 매년 지급수수료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과 국세청은 오너 일가가 직접 지배하는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오너 일가 및 주력 관계사의 해외 자금세탁 창구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국내 재산 불법 반출과 탈세 혐의를 따지고 있다.

23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유 전 회장과 두 아들 대균(44), 혁기(42)씨는 해외법인 붉은머리오목눈이를 2012년 세웠다. 프랑스 쿠르베피 마을을 사들였던 프랑스법인 아해프레스프랑스(AHAE PRESS FRANCE)를 설립했던 때와 같은 시기다. 유 전 회장 일가는 아이원아이홀딩스 천해지 아해 등 주력 계열사를 내세워 아해프레스프랑스를 설립했지만 붉은머리오목눈이의 경우 자신들이 직접 출자해 출범시켰다.

이 같은 정황은 유 전 회장 일가의 지주회사 격인 아이원아이홀딩스의 감사보고서에서 드러난다. 아이원아이홀딩스는 붉은머리오목눈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2012년과 2013년 감사보고서에서 기타 특수관계자로 분류해 놓았다. 자산 100억원 이상의 외감법인은 대주주가 지배하는 개인회사에 대해서도 특수관계자로 회계처리해야 한다.

붉은머리오목눈이라는 특이한 회사명은 유 전 회장의 사진 취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유 전 회장은 해외에서 얼굴 없는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유독 새와 풍경 사진을 찍어왔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딱새과 조류로 일명 ‘뱁새’로 불린다. 그의 사진 작품이 실린 아해 홈페이지에도 붉은머리오목눈이 사진이 다수 게재돼 있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설립된 2012년부터 매년 아이원아이홀딩스에서 1억2000만원의 지급 수수료를 받아왔다. 유 전 회장 일가가 대주주가 아닌 관계 회사들도 이 같은 방식으로 붉은머리오목눈이에 자금을 지원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유 전 회장 일가가 지배하는 문진미디어 국제영상 등 미디어 계열사가 해외로 적지 않은 자금을 보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붉은머리오목눈이로 흘러간 국내 관계 회사의 자금은 유 전 회장 작품을 매입하는 대가 등으로 추정된다.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은 해외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해온 유 전 회장이 사진으로 만든 달력을 개당 500만원씩 받고, 자신이 실질 지배하고 있는 13개 관계 회사에 수억원어치씩 강매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