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소설가, 주인공의 그 장소로 떠나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303쪽 / 1만4000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303쪽 / 1만4000원
소설가가 에세이를 통해 ‘외도’하는 일은 독자에겐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을 통해서만 이야기하던 작가들이 에세이에선 날것 그대로의 음성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소설 《7년의 밤》과 《28》의 작가 정유정 씨(48)가 첫 여행에세이를 내놓았다. 지난해 9월5일부터 17일간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종주한 그는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에 그 경험을 오롯이 담아냈다.
내놓는 작품마다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그가 히말라야엔 무슨 일로 갔을까. 그는 “《28》을 끝낸 직후 머리가 불러도 몸이 응답하지 않고, 몸이 불러도 대꾸하지 않는 상황이 왔다”고 털어놓는다. 그의 머릿속에 불현듯 안나푸르나가 떠올랐다. 등단작 《내 심장을 쏴라》 주인공인 승민에게 특별한 장소다.
네팔 히말라야산맥 중부에 있는 안나푸르나는 신이 허락한 자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 불린다. 해발 5416m의 소롱라패스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강인한 체력이 필요한 트레킹 코스. 해외여행 한 번 해본 적 없는 그는 후배 소설가 김혜나를 설득해 함께 네팔 카트만두행 비행기에 오른다. 그곳에서 그는 입에 맞지 않는 음식, 고산병 증세, 불면증, 추위와 싸우며 행군을 펼친다.
책 전반을 지배하는 코드는 ‘웃음’이다. 정씨의 천연덕스럽고 냉소적이며 동시에 섬세한 유머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찬물로 씻기 싫어 더러운 얼굴에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화장실이 급해 1416m 내리막길을 50여분 만에 주파하는 모습에선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동질감마저 느껴진다. 깔깔대고 웃다가 예고 없이 등장하는 저자의 개인사는 마음 한 편을 ‘쿵’ 하고 울린다.
“스물두 살은 내 생의 랜드마크였다. 어머니가 투병을 시작한 해였고, 질주하듯 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내 등에는 세 동생이 업혀 있었다. 나는 싸움꾼이 돼야 했다. 죽는시늉 하지 않고 살아남아야 했으므로.”
이 책은 어쩌면 여행기라기보단 저자의 고백을 담은 책이라고 봐야 할 듯싶다. 저자는 “안나푸르나에 오면서, 링이 아닌 놀이터에 나를 부려놓으리라, 결심했다”고 담담히 고백한다.
“안나푸르나를 향해 묻던 내 목소리를 생각했다. 나는 세상으로 돌아가 다시 나 자신과 싸울 수 있을까. 그때 답해왔던 목소리가 똑같은 답을 들려주었다. 죽는 날까지.”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베스트셀러 소설 《7년의 밤》과 《28》의 작가 정유정 씨(48)가 첫 여행에세이를 내놓았다. 지난해 9월5일부터 17일간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종주한 그는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에 그 경험을 오롯이 담아냈다.
내놓는 작품마다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그가 히말라야엔 무슨 일로 갔을까. 그는 “《28》을 끝낸 직후 머리가 불러도 몸이 응답하지 않고, 몸이 불러도 대꾸하지 않는 상황이 왔다”고 털어놓는다. 그의 머릿속에 불현듯 안나푸르나가 떠올랐다. 등단작 《내 심장을 쏴라》 주인공인 승민에게 특별한 장소다.
네팔 히말라야산맥 중부에 있는 안나푸르나는 신이 허락한 자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 불린다. 해발 5416m의 소롱라패스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강인한 체력이 필요한 트레킹 코스. 해외여행 한 번 해본 적 없는 그는 후배 소설가 김혜나를 설득해 함께 네팔 카트만두행 비행기에 오른다. 그곳에서 그는 입에 맞지 않는 음식, 고산병 증세, 불면증, 추위와 싸우며 행군을 펼친다.
책 전반을 지배하는 코드는 ‘웃음’이다. 정씨의 천연덕스럽고 냉소적이며 동시에 섬세한 유머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찬물로 씻기 싫어 더러운 얼굴에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화장실이 급해 1416m 내리막길을 50여분 만에 주파하는 모습에선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동질감마저 느껴진다. 깔깔대고 웃다가 예고 없이 등장하는 저자의 개인사는 마음 한 편을 ‘쿵’ 하고 울린다.
“스물두 살은 내 생의 랜드마크였다. 어머니가 투병을 시작한 해였고, 질주하듯 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내 등에는 세 동생이 업혀 있었다. 나는 싸움꾼이 돼야 했다. 죽는시늉 하지 않고 살아남아야 했으므로.”
이 책은 어쩌면 여행기라기보단 저자의 고백을 담은 책이라고 봐야 할 듯싶다. 저자는 “안나푸르나에 오면서, 링이 아닌 놀이터에 나를 부려놓으리라, 결심했다”고 담담히 고백한다.
“안나푸르나를 향해 묻던 내 목소리를 생각했다. 나는 세상으로 돌아가 다시 나 자신과 싸울 수 있을까. 그때 답해왔던 목소리가 똑같은 답을 들려주었다. 죽는 날까지.”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