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를 소재로 한 한효석 씨의 설치작품.
돼지를 소재로 한 한효석 씨의 설치작품.
비위가 약한 사람은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에 입장을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피부가 벗겨져 살점이 드러난 엽기적 초상화가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무료로 입장하는 대신 구토증이라는 통과의례를 받아들여야 한다.

전시를 열 때마다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작가 한효석 씨가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열고 있는 여덟 번째 개인전을 통해 또다시 관객을 시각적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한씨는 2011년 홍익대 현대미술관의 그룹전 ‘큐레이터 프로젝트’전에 성기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남녀 인체 부조를 출품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주인공. 그가 유독 고깃덩이에 집착하는 것은 현실 세계를 바라보는 확고한 신념 때문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피부를 벗겨내면 결국 똑같이 핏기를 머금은 살덩이에 불과하다”고 보는 그는 “겨우 5㎜ 될까 말까 한 얇은 피막이 인간과 동물, 흑백 인종, 남녀의 존엄성을 가르는 절대적 잣대가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런 생각은 설치 작품인 공중부양 돼지에 뚜렷이 반영돼 있다. 작가는 이번 작업을 위해 1년 반 동안 전북 태인에 있는 지인의 양돈농장 부근에 작업실을 짓고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죽거나 병든 돼지를 이용해 실리콘 레진 작업으로 돼지의 형상을 복제했는데 여름에는 부패가 심해 주로 겨울에 작업했다.

양돈을 했던 부모님을 어려서부터 도와야 했던 그는 힘겨운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돼지의 삶에 깊은 연민을 느끼게 됐고 그를 둘러싼 사회 현실에 눈뜨게 됐다고 한다. 평생 움직임이 제한된 좁은 공간 속에서 몸집을 키운 뒤 최고의 상품가치에 도달했을 때 도축을 위해 우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돼지는 죽음을 통해서만 비로소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는 역설적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은 또한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운명과도 닮았다고 봤다.

이런 혐오스러운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예술적 독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대중이 혐오한다고 해서 그들 눈높이에 맞춰 작품을 제작하면 그것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라는 것. 그의 작품을 보며 관객은 고깃덩이에 대한 구토증의 이면에 자리한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의 존재를 깨닫고 다시 한번 구토증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5월1일까지. (02)725-1020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