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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하는 소리에 놀라 객실 밖으로 뛰쳐나왔더니 배가 금세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16일 오후 사고 해역 인근 진도 팽목항.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허웅 씨(52·제주 서귀포시)는 병원 이송을 기다리던 중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제주~인천 간 화물운송 일을 하는 허씨는 자다가 팬티 바람으로 선상으로 튀어나갔다고 한다. 그것도 잠시. 중심을 못 잡고 휘청거리다 선미에 있는 쇠기둥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어선 하나가 와서 그의 손을 붙잡은 것은 그로부터 40여분이 지나서였다. “한동안 아무도 오지 않아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습니다.”

< 구조 나선 해경 > 목포 해양경찰들이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 주변에서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다. 사고 현장에는 해경과 해군 함정 72척, 헬기 18대 등이 동원돼 수색작업을 벌였다. 연합뉴스
< 구조 나선 해경 > 목포 해양경찰들이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 주변에서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다. 사고 현장에는 해경과 해군 함정 72척, 헬기 18대 등이 동원돼 수색작업을 벌였다. 연합뉴스
[진도 여객선 침몰 대참사] "'쿵' 하더니 순식간에 90도로 기울어…곳곳서 비명"
진도 앞바다 여객선 침몰 사고에서 구조된 사람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여객선은 충돌하자마자 순식간에 한쪽으로 90도 기울었다. 승객들은 순간적으로 일어난 참사에 미처 대처할 새도 없이 배 안에 갇힌 것으로 추측된다.

안산 단원고 2학년 김진수 군(16)은 오전 8시30분께 배터리를 충전하려고 선상 라운지에 있다 화를 면했다. 그는 충돌과 동시에 배가 한쪽으로 쏠리면서 벽에 귀를 부딪혔다. 김군은 벽을 바닥 삼아 쪼그려 앉아 있다가 물이 발밑으로 차올라 오는 것을 보고는 무조건 배 위쪽으로 기어올라갔다고 한다. 김군 역시 오전 9시10분께 구조선에 발견돼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는 “식수통이 넘어지면서 흘러나온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어 탈출에 어려움을 겪은 사람도 적지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같은 학교 정모양(16)은 “여객선 2층 방 안에 있었는데 갑자기 배가 기울기 시작해 밖으로 나왔다”며 “나를 비롯해 아이들이 중심을 못 잡고 넘어졌다”고 말했다. 당시 여행가방과 소지품들이 바닥으로 쏟아졌고 학생들의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나왔다. 정양이 있던 방에는 학생 8명이 있었으며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고 한다.

이날 사고 발생 직후 같은 마을 어선 5척과 함께 생존자 구조를 위해 현장으로 나간 정모씨(52)는 “미역을 캐러 나갔다가 사고가 났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배를 몰고 나갔다”며 “하지만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배가 이미 3분의 2가량 물에 잠겨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배가 거의 가라앉은 이후에도 해경 잠수부로 보이는 구조대원들이 바닷속에서 승객 2명을 구조했다”며 “배 안에는 사람들이 더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진도=최성국/김우섭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