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공연리뷰]“혼돈의 시대. 무엇을 선택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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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경 연출의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장면을 연습하다.
그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2014.4.23-2014.9.28까지 충무 아트홀. 게릴라 소극장)에서 젊은 연출가와 중견 연출가들이 모였다. 다양한 실험성으로 지금도 유효한 셰익스피어를 그려내기 위해서다. 셰익스피어 연극들이 볼만하고 풍성하다. 그와 만나는 연출가들도 믿음이 간다. ‘한여름 밤의 꿈’을 통해 우리 것의 수용성이 무대에서 새롭게 창조 될 수 있다는 실험적인 연출을 시도한 한 양 정웅 연출의 ‘로미오와 줄리엣’도 기다려진다. 70-80년대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연출(관객모독 등)을 그려낸 기국서. 그가 쓰고, 이 시대의 이야기꾼 이자 우리 것의 수용과 섞임을 전투적인 실험적 연출을 통해 철저히 대중관객들을 현혹하고 유혹하고 있는 이 윤택 연출의 신작‘리어’는 두 연출가가 어떻게 만나질지 흥미를 끈다. 두 연출가만 할 수 있는 시도다. 그동안 인간의 깊은 심리를 파격적으로 다루어 온 박근형 연출( 청춘예찬, 대대손손,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너무 놀라지 마라 외)의 ‘로미오와 줄리엣’도 이 시대에 그 만이 품고 있는 어떤 로미오와 줄리엣을 어떻게 만들어 낼지 관심을 끈다. 이외 이 채경 연출을 비롯한 젊은 연출가들과 중견들의 작품들은 새로운 시도로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제2회 셰익스피어 문화축제에 첫 출발을 한 이 채경 연출(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씬을 연습하다. 2014.4.4.-4.27일 까지 게릴라 소극장 공연)은 독일의 극작가 ‘모리츠 잉케’의 원작 “여자의 벗은 몸을 아직 못 본 사나이”를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브로해“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장면을 연습하다”로 제목을 붙이고 1시간으로 압축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닫히고 말라버린 시대의 현상들 속에 깨져버린 인간의 영혼을 무엇으로 치유해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으로 무대 밖 세상을 향해 던지고 있다.○어느 날 종말이 찾아온다면?…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파괴된 인간의 영혼과 . 어느 날 지구의 종말이 찾아온다면 ? 꿈이다. 무대는 지하실 이다. 펠렉스( 강호석 역) 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 지하 연습실에 작은 발코니를 옮겨 놓았다. 그는 닫힌 현실을 치유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 사랑 만들기 장면이다. 그 발코니 아래로 아기천사 조각상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 발코니 장면을 완성 할 수 있는 것은 맑은 영혼을 가진 ‘인간’이자 황폐 해진인간 영혼의 치유할 수 있는 ‘ 신’ 만이 할 수 있다. 현실과 닫힌 고립된 인간이 재창조 되어야 할 지하세계는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는 기다림의 공간이다. 그 기다림 속에 펠렉스( 역, 강호석)는 더욱 무기력해 간다. 펠렉스의 첫 대사 중 “ 왜 안와? 오늘 발코니 씬을 해결해야 한다고. 아주 인간적인, 순수하게 인간적인 순간을 만들어야지. 왜 안와! 왜..왜..왜..왜..”는 기다림의 시작이다. 이 장면을 연습하기 위해 등장하는 배우들( 안젤라, 피터)는 나타나질 않는다. 그 지루한 기다림. 갑자기 지구에 떨어진 ‘헬름브레히트( 역, 임현준)’. 밖의 세계는 영화같은 종말적 세상이다. 지하 연습실로 찾아온 펠렉스의 애인 ‘안나’ 배우들은 나타나질 않는다. ‘펠렉스’는 ‘렐름브레히트’와 로미오와 줄리엣의 뜨거운 욕망적 사랑이 담긴, 발코니씬을 ‘안나( 역, 배보람)’와 만들어 나간다. 서서히 뜨거운 사랑이 녹아나는 발코니장면. 두 사람의 영혼과 하나 되어 석양으로 녹아들면, 꿈이다. 그러나 그 꿈은 현실 그대로다. 연출은 무대를 통한 시선을 현재의 삶으로 바라본다. 시선은 차갑다. 숨쉬기조차 힘이 든다. 얼음처럼 차가운 연출의 관점이다. 무대는 지하와 그 지하실을 통해 외부로 연결되어 있는 계단이 존재 한다. 그 끝은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고. 밖의 세계는 현재의 삶이라는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연출이 그려놓은 삶은 인간이 살수 없다. 희망이 파괴되고, 영혼은 말라간다. 그 무기력을 깨워내는 것은 영혼의 치유다. 연출은 이러한 치유의 전류를 로미오와 줄리엣의 뜨거운 사랑장면 만들기를 통해 투영한다. 종말적 세상바라보기는 연출이 바라보는 현재 세상과 마주 한다. 무대 공간도 이분법적으로 갈라져 있다. 안( 지하 연습실 공간) 과 밖( 외부세계, 현실풍경)만 존재한다. 그 세계를 연결하는 것은 지하실 뒤쪽에 놓인 계단뿐이다. 계단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죽음의 계단이다. 계단을 통해 외부로 나가면 피투성이가 된다. 갈수 없고, 살지 못하는 곳이다. 사람이 다닐 수 없는 박재되어 있는 통로다. 닫혀져 있는 지하 세계다. 지하에는 차가움을 내뿜은 커다란 냉장고만 존재한다. 책상에 놓인 장미꽃은 닫힌 현실에서 숨을 쉬고 살아가지 못하는 시들어 가는 인간의 내면이다.종말적 세상에 ‘안나’ 와 ‘펠릭스’ 두 사람만이 공존한다.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안젤라와 피터는 오질 않는다. 인간이 피투성이가 되고 파괴 되어 가는 외부 세계는 임박한 종말적 세상이다. 희망이 없는 삶이다. 그 속에 인간은 무기력해 지고, 더 절망한다. 그 절망은 어느 날 지구로 떨어진 헬름브레이트를 통해 그 절망을 치유해 나간다. 세상과 마주한 그의 첫 말은 “비바람, 폭풍, 불길, 얼음, 칼, 이 모든 것, 마주하기 두렵구나. 하늘이 울고 있다.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대사를 뱉어낸다. 첫 등장부터 밖의 현실을 그대로 담아낸다. 현실과 마주한 상처받은 영원을 치유해 줄 순수한 영혼의 ‘신’적 존재이다. 그만이 뜨거운 심장을 만들고, 녹여 낼 수 있다. 연출은 차가워진 인간의 마음과 현실에 ‘영혼의 심장’을 못 밖아 두려고 한다. 그가 닫히고 죽어가는 쓰러짐의 현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오브제(돌)는 자연과 연결된다. 돌은 헬름브레이트의 유일한 숨결이다. 그 숨결은 광활한 자연과 소통된다. 신과 연결될 수 있는 자연적 환경이며, 치유의 도구다. 헬름브레히트와 동실시 될 수 있는 자연의 영혼이다. 그는 인간들이 사용하는 것을 배우며, 현실과 천천히 인간에 동화되어 간다. ‘종말이 임박해 진다’라는 극적 설정 속에 헬름브레히트와 안나의 유일한 구원은 ‘진정한 사랑’이고 그것을 품어내는 것이다. 그 구원을 만들어가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 장면은 처음부터 세상을 품어내는 뜨거운 석양이 될 수 없다. 쉽게 다가서질 못한다. 현실의 인간( 안나)에 묻어 있는 내면세계는 치유의 신( 헬름브레히트)의 영혼과 쉽게 흡수 되지 못한다. 치유되는 과정은 쉽지 않다. 두 영혼의 섞임을 지켜보는 펠렉스는 용서될 수 없다. 그가 쥐고 있는 대본의 발코니 장면을 찢어낸다. 자연의 신을 부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간의 혼란한 내면세계를 그대로 닮아 있다. 펠렉스는 차가운 연기가 내뿜어지는 냉장고에 헬름브레히트를 가둔다. 안나가 지켜보는 가운데 냉동된 헬름브레히를 인간의 마음으로 조정한다. 그러나 그 인간의 욕망에 헬름브레히트는 흡수되지 못하고 초월한다. 이러한 설정의 반전은 안나의 심장을 녹리고, 영혼의 감정을 불러 세운다. 그리고는 인간의 욕망을 넘어선 초월적인 발코니장면을 만들어 내고 석양에 흡수된다. 쓰러져 있는 인간의 욕망과 현실세계의 어두움을 치유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진정성이다. 마음을 녹여 낼 수 있는 것은 깨끗한 ‘영혼’이다. 석양은 현실을 냉혹하고 바라보는 시선이자 인간의 욕망과 혼돈의 현실을 씻어낼 수 있는 구원이다. 이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마음이다. 꿈으로 돌아온 무대. 늦게 연습실로 들어선 안젤라와 피터. 그는 “펠릭스, 안젤라! 괜찮아요? 우리가 상황을 너무 과소평가했는지도 몰라요. 정말 세상이 무너져 내리고 있어요.(세상이 무너지는 소리 들린다.)” 그들이 살아가는 밖의 세상은 꿈이 아닌 현재의 삶이다. 외부와 연결될 수 없는 닫힌 세계는 계단을 밝고 올라설 수 없는 현재다. ○이채경 연출의 시선과 연극공간 문법‘말’이 넘쳐나는 사회다. ‘말’은 진정성을 잃고 혼란스럽다. 가치를 잃은 지 오래다. 말은 뱉어내는 사람의 주관이다. 인간의 진심과 진정성은 ‘말’ 보다는 행동을 통해서 나타난다. 그러나 때로는 인간의 내면의 진정한 의미를 담은 말의 가치는 현재에도 유효하다. 한마디가 큰 울림을 줄 수 도 있다. 인간의 심장을 녹여 내릴 수 있고, 초월할 수 있는 진정성이 필요한 사회다. 넘쳐나는 현실에서 인간의 절망을 치유 할 수 있는 것은 맑은 영혼이다. 세계를 감싸고 있는 혼란의 시대에 상처로 얼룩진 인간을 치유 할 수 있는 것은 초월적인 사랑이다. 그것이 말라버린 인간의 영혼을 치유 할 수 있는 ‘유일함’이다. 시간이 걸린다. 이러한 사랑을 그려내기 위해 이 채경 연출은 말에 의존하는 현실적 세상보다는 그 진실성을 언어를 초월한 사랑으로 녹여내고 싶어 한다. 이러한 사랑은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닌, 인간 누구나 품고 살아가야 할 근원이다. 두 개의 영혼이 한 몸이 될 수 있는 공존의 사회는 시간이 필요하고 더디다. 그래서 발코니 장면 만들기는 오래 걸린다. ○인간의 내면성과 이미지, 소리, 다른 언어의 차용은 연출의 몫이다이채경 연출의 세상보기는 차갑다. 그러나 밝고 순수하다. 이러한 시선의 차가움이 다양한 연극문법으로 들어난다. 작품을 이성적인 날카로운 시선으로 받아들이는 연출적 태도와 그에게 맞는 작품 선택은 그와 잘 연결된다. 그의 실험성은 한국 현대연극에서 반드시 필요한 연출가다. 연출은 인간의 내면과 언어를 통해서 그 외침을 전달할 수 도 있고, 움직임과 이미지, 소리를 통한 연극적 문법으로도 그 시선의 외침을 다른 시각과 해석으로 연출 관점을 전달 할 수 있다. 선택은 연출의 몫이다. 2012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발에 창작 뮤지컬 ‘쌤’ 으로 그해 창작뮤지컬 대상을 받은 젊은 연출가다. 기대가 크다. 많은 연극인들이 주목하고 있다. 연출가는 초현실주의적인 표현을 즐긴다. 언어보다는 이미지, 소리, 음악, 인물의 그로테스크한 캐릭터들이 그의 언어가 된다. 무대는 그러한 삶을 지을 수 있도록 간편화되어 구조화 된다. 이성적이고 매우 논리적인 삶의 태도가 그대로 무대를 통해 녹여진다. 관객을 향한 언어는 명확해야 한다. 연출이 자주 즐기고 사용되어지는 연극 만들기의 재료들 선택도 연출자가 고른다. 그렇게 골라낸 연극재료 들이 무대라는 공간에서 살아 움직이면서 언어를 만들어 낸다. 잘 섞여져야 한다. 언어는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연극이라는 특수한 집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는 더욱 명확하게 전달되어야 받아 드릴 수 있다. 의도와 전달은 다르다. 차갑기만 하고 인간의 숨소리가 들리지 못하면 매력이 떨어진다. 이번 작품에서는 헬름브레히트와 안나가 그려내는 발코니의 뜨거운 장면만으로는 연출의 전체적인 의도가 무대공간을 가득 메우질 못한 아쉬운 점이 있다. 밖에서 일어나는 혼란의 소용돌이 들이 계단 문 앞에서 끝내져 인물의 상황으로 처리하는 것 보다는 종말적 세상이 지하로 떠 뚫고 내려와야 한다. 지하가 더욱 흔들거려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무대의 입체감이 비어 보인다. 밖은 분주한데 그 분주함이 관객의 가슴으로 더욱 향하고 있질 못하니 긴장감이 형성되질 않는다. 송곳이 되질 못하는 것이다.
○등장인물과 배우등장인물도 구조에 갇혀져 있으니 이야기만 흐른다. 소리, 이미지, 발코니 장면 만 있다. 갇혀 있는 연극공간의 구조에서는 배우의 변화가 어렵다. 표현도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들을 변화 시키는 동기부여가 아쉽다. 의도된 발코니장면 만들기만 들어온다. 그것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는 대한 이유는, 연출가가 입체적인 형태로 풀어내야 한다. 설정을 살아 움직이게 만들어야 인간의 내면과 호흡이 열릴 수 있다. 연출가의 역할이다. ‘안나’ 와 극중극 로미오 역할을 맡은 백 보람은 내면이 살아 감정이 꿈틀되지만, 더욱 깊게 무대를 뚫어내질 못하고 있다. 배우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배우로써 좋은 재료들을 많이 갖고 있다. 펠릭스 역 (강호석), 헬름브레히트 역( 임현준)도 잠재적인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배우의 언어는 느끼고, 담고, 그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풀어내지 못하면 때로는 배우의 이미지로, 움직임으로, 대사의 언어로 그 영역을 뛰어 넘어 무대에서 살아 숨 쉴 수 없다. 이 채경 연출이 선택한 이번작품은 그가 10년 후 우리나라 현대연극의 중심적인 여자 연출가로써 가능성을 크게 열어놓고 실험적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기대되는 연출가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세계,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것은 이성의 논리가 아닌 진정한 체험이고 또 다른 세상보기다. 그것을 뛰어 넘지 못하고는 연극이라는 집짓기는 다양화 될 수 없다. 이 채경 연출이 몇 작품이라도 사람냄새 불씬 풍기는 집을 짓고 무대에서 살아본다면, 연출의 탁월한 재능이 경계를 뛰어 넘는 연출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녀의 연출 적 광기가 멈추질 않길 바란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뮤지컬·공연 평론·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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