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관 첫 담배소송 건보공단이 이길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내외 담배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개인이 아닌 공공기관이 담배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건보공단은 14일 KT&G 필립모리스코리아 BAT코리아 등 세 개 담배회사를 상대로 흡연 때문에 추가로 부담한 진료비를 물어내라며 537억원을 청구하는 흡연피해 손해배상청구 소장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했다.

소송가액은 흡연과의 인과성이 높은 세 개 암(폐암 중 소세포암과 편평상피세포암, 후두암 중 편평세포암) 환자 중 20년 이상 매일 한 갑 이상의 담배를 피웠거나 흡연량에 상관없이 30년 이상 담배를 피운 사람들의 10년간(2001~2010년) 진료비(건강보험 부담분)로 결정됐다.

"흡연과 암 인과관계 자료있다"…담배 3社에 537억 손배소

변호인으로 선임된 법무법인 남산의 정미화 대표 변호사는 “당초 최대 2300억원대의 소송가액을 거론하기도 했지만 승소 가능성과 소송 비용 등을 고려해 서울고등법원이 2011년 흡연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암에 한해 소송을 시작하기로 했다”며 “추후 소송을 진행하면서 대상을 다른 암까지 확대해 소송 규모를 키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기관 첫 담배소송 건보공단이 이길까
건보공단이 담배소송을 제기한 것은 흡연으로 인한 건강보험재정의 압박을 방치할 수 없고 흡연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자료도 확보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종대 건보공단 이사장은 “2011년 기준 전체 건보 진료비의 3.7%에 해당하는 금액이 흡연으로 인해 초래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법 58조엔 제3자로 인해 건강보험 진료비가 쓰일 경우 건보공단이 제3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공단 측은 이번 소송이 최근 대법원에서 패소한 개인소송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10일 대법원은 폐암환자와 유족 등 30명이 KT&G와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피해자들이 걸린 암이 정확히 흡연 때문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확정 판결을 내렸지만 건보공단은 개인과 달리 지난 20년간 130만명의 건강보험 기록이 담긴 빅데이터를 연구·분석해 흡연과 폐암 발생의 연관성을 입증할 근거를 마련해 놓았다는 것이다. 건보공단의 안선영 변호사는 “KT&G의 위법성을 증명할 내부 문건도 확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KT&G뿐만 아니라 해외 담배업체인 필립모리스와 BAT 한국법인까지 소송대상에 포함된 것도 승소에 유리한 측면이라고 공단 측은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간접흡연 위해성 공지 미비 등 필립모리스와 BAT의 위법사실을 인정한 판례가 해외에 다수 있다”고 말했다. 건보공단은 국내외 전문가는 물론 세계보건기구(WHO)와도 협조할 예정이다.

담배업계는 소송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KT&G 관계자는 “이미 개인 소송에서 대법원은 KT&G가 담배를 제조·판매하면서 위법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는 점을 명백히 확인했다”며 “건보공단 소송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를 다시 증명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납세자연맹 등은 승소 가능성이 적은 소송에 혈세를 낭비하려 한다며 이번 소송에 반대의사를 밝혔다. 납세자연맹은 이날 성명을 내고 “술 먹고 운전하다가 사고가 났는데 보험회사가 주류회사와 자동차회사에 각각 소송을 제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혈세를 낭비하는 것으로 공단이 패소한다면 직무유기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