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내려가기 싫다" 국민연금 운용역 이탈 조짐
430조원의 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핵심 운용역들이 대거 이직할 조짐이다. 공공정책에 국민연금 자금을 동원하려 하는 등 정부의 무책임한 간섭이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본사의 전주 이전이 확정되자 핵심 운용역의 이탈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6일 한국투자공사(KIC) 등에 따르면 25명을 선발할 예정인 신입·경력사원 모집에 국민연금 운용역 10여명이 지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KIC는 정부 외화 자산(작년 9월 말 기준 550억달러)을 운용하기 위해 2005년 설립된 기관으로 해외투자만을 담당한다. 국민연금에서 KIC로 지원한 사람들은 해외 투자 경험을 쌓은 30대 운용역이 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기금본부에 근무하는 A 과장(37)은 “국민연금은 한국의 최대 기관투자가로서 이곳에서 자금을 운용한다는 자부심이 있어 연봉 차이에도 불구하고 KIC로 옮길 이유가 없었다”며 “그러나 본사가 전주로 가게 되면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은 물론 업무적으로도 빠른 의사결정이 불가능해져 서울에 있는 KIC로 이직을 원하는 사람이 꽤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과 KIC 운용역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각각 7131만원(성과급 제외), 9752만원으로 2000만원 이상 차이 나지만 국민연금 운용역이 KIC로 이직한 적은 없었다.

이 같은 조짐은 올 들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 2월 국내 실물투자를 전담해온 대체투자팀장이 싱가포르투자청(GIC) 한국사무소로 이직하면서부터다. 올 들어서만 3명이 퇴사했고, KIC 합격 발표와 함께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012년과 2013년 퇴사 인원은 각각 8명, 7명이었다.

국민연금은 전주 이전으로 인해 해외투자 전문 인력이 대거 빠져나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156명 운용역 가운데 해외 학력 소지자 비율은 25% 수준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해외투자를 늘려야 하는 때에 이를 맡을 전문가들이 사라지는 꼴”이라며 “전주 기피 현상으로 대체 인력을 찾기도 어려워 장기적으로 수익률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력 이탈 외에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돈을 정책용 ‘쌈짓돈’ 취급하는 정부의 관행도 국민연금 기금본부가 제 역할을 못하도록 만든다고 비판한다. 국토교통부가 4%대 수익률을 보장한다며 임대주택 리츠 사업에 국민연금의 참여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국민연금의 연 목표 수익률은 6% 안팎이다.

보건복지부가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통해 기금본부의 핵심 현안을 통제하는 것 역시 해결 과제로 지목받고 있다. 복지부 재정과장이 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어 의제를 정할 수 있다. 의결권 행사지침 강화안만 해도 복지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