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소리 나는 실적…보험왕은 아무나 하나
“상냥하지도 않고 무뚝뚝한 남성 텔레마케터를 누가 반기겠어요. 담배까지 끊으면서 악착같이 했죠.”(하이카다이렉트 보험왕 김태현 씨) “천생 아줌마인 걸요. 아줌마 색깔을 지우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알리안츠생명 보험왕 김장희 씨)

어김없이 ‘보험왕’의 계절이 돌아왔다. 보험회사들은 매년 3~5월에 보험왕을 선정하고 시상한다. 우수한 실적을 올린 보험설계사를 격려하는 의미 있는 행사다. 보험왕은 수억원의 연봉을 받는 ‘성공 인생’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밑바닥에서 출발해 보험왕에 오른 그들의 스토리는 언제나 감동이지만 올해는 특히 주목할 만한 사연이 많다.

3~5월은 ‘보험왕’의 계절

하이카다이렉트의 보험왕 김태현 씨(41)가 대표적이다. 그는 ‘여성 고유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텔레마케팅에서 발군의 영업력을 발휘해 2005년 회사 설립 이후 첫 남성 보험왕이 됐다. 하이카다이렉트는 인터넷이나 전화 영업으로 보험상품을 파는 온라인 보험 전문회사다. 목소리가 부드럽고 말투가 상냥한 여성 텔레마케터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입사 2년차인 김씨가 텔레마케터로 자리 잡는 데도 목소리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는 굵고 퉁명스러운 목소리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담배와 커피부터 끊었다. “중저음의 투박한 말투를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바꿔보자는 역발상을 했습니다. 과장된 상품 설명 대신 차분한 안내로 전문성과 신뢰감을 심어주려고 노력했죠.” 하루 평균 통화량이 270분으로 다른 텔레마케터들의 평균인 180분을 훌쩍 넘어선 것도 지난 한 해 1523건의 계약을 성사시킨 배경이다.

알리안츠생명의 PA(Professional Advisor·전문설계사) 부문 보험왕 김장희 씨(42)도 ‘독종’ 캐릭터다. 알리안츠생명의 PA 부문은 남성 설계사 위주의 조직이다. 30~40대 남성 설계사를 앞세워 의사·변호사·최고경영자(CEO) 등 전문직 종사자를 공략한다. 2001년 알리안츠생명이 PA 부문을 만든 이후 여성 보험왕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감성에 호소하는 이른바 ‘아줌마 성향’을 극복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전문직 고객을 설득하려면 금융·사회·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이슈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평범한 주부였던 제겐 정말 힘든 벽이었습니다.”

김씨는 국어사전도 끼고 살았다. 상황에 가장 적확한 단어를 구사하기 위해서다. “두루뭉술한 표현 대신 짧은 문장이라도 꼭 숫자와 고유명사를 사용하며 대화했습니다. 노력에는 장사가 없더라고요.”

동양생명의 보험왕 장금선 씨(49)는 꿈꾸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구에서 해운회사 경리를 하다 사업하는 남편을 따라 상경한 장씨는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설계사 생활을 시작했지만 이제 관리 고객이 2500명에 달한다. 지난 한 해 하루도 빠짐없이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7년 전 경기 화성시 근처에 3305㎡(약 1000평)의 땅을 샀다. 일생의 꿈인 치매 환자를 위한 요양센터 건립을 위해서다. “꿈이 있으면 이겨낼 의지가 생기잖아요. 영업 도중 냉대나 홀대를 받아도 다시 시작할 용기가 솟지요. 앞으로 1000평은 더 사야 해 갈 길이 멉니다.”

“일단 즐겨야죠…그 다음이 성실·뚝심”

현대해상 보험왕(신인상) 신재효 씨(31)는 호텔리어 출신이다. 보험영업에 뛰어든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새내기지만 월 700만원대 소득을 올리는 보험왕이 됐다. 신씨는 호텔리어로 3년 넘게 일했다. 하지만 박봉과 육체적인 어려움에 회의를 느끼던 중 지인의 소개로 보험영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이도 어리고 어리숙한 젊은 여성을 못 미더워하더라고요. 그래도 자꾸 안부 연락을 하고 ‘얼굴도장’을 찍으니 조금씩 마음을 여는 게 보였어요.” 신씨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게 설계사 직업의 최고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일단은 즐겨야 해요. 그 다음이 성실함, 뚝심이죠.” 보험왕들의 공통된 말이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