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사비 6000만원 부풀린 곳 > 부산 사상구 사상공단에 있는 D금형업체 회의실 모습. 고용노동부에는 1억400여만원을 들여 리모델링한다고 신청했지만 실제 공사에 들어간 돈은 4400만원에 불과했다. 부산북부경찰서 제공
< 공사비 6000만원 부풀린 곳 > 부산 사상구 사상공단에 있는 D금형업체 회의실 모습. 고용노동부에는 1억400여만원을 들여 리모델링한다고 신청했지만 실제 공사에 들어간 돈은 4400만원에 불과했다. 부산북부경찰서 제공
부산 사상공단에서 금형제조업체를 경영하는 A씨는 지난해 3월 사업장 일부를 리모델링해 직원 휴게실, 기숙사, 샤워시설, 회의실 등을 갖췄다. 직원 복지시설을 만들면 공사비보다 많은 금액의 국가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한 컨설팅 업체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말만 복지시설일 뿐 직원 휴게실에는 이불 두 채, 회의실에는 화이트보드 한 개와 플라스틱 의자 한 개가 전부였다. 심지어 샤워실에는 샤워기 대신 수도꼭지와 양동이 하나만 놓여 있었다.

그런데도 이 업체는 지난해 7월 고용노동부로부터 ‘고용환경개선 지원금’으로 4400만원을 받았다.

컨설팅업체의 도움을 받아 공사비용을 1억500만원으로 부풀려 고용부에 지원금을 신청한 결과였다.

고용환경개선 지원금 등 200여개 종류의 국가보조금을 노리는 불법 컨설팅 업체가 활개치고 있다. 업체 수는 수천 곳으로 추정된다. 2012년 기준으로 국가보조금 규모는 46조4900억원으로 국가예산의 14%에 해당한다.

대검찰청과 경찰청의 공동수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적발된 국가보조금 부정 수급액은 1700억원에 달했다. 대부분의 사건에서 브로커들이 연루된 것으로 나타났다. 윤한회 부산 북부경찰서 지능팀장은 “영세 제조업체가 많은 부산이나 대구의 공단지역에 이처럼 국가보조금을 불법으로 빼돌리는 전문 컨설팅 업체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경찰에 적발된 한 불법 컨설팅 업체의 대표는 경찰 조사에서 “활동 중인 고용환경개선지원금 관련 컨설팅 업체가 부산지역에만 10여개, 전국적으로는 100여개가 넘는다”고 말했다.

올 2월 경찰에 붙잡힌 한 컨설팅 업체의 영업사원은 “국가보조금을 노린 업체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며 “다양한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정보기술(IT), 건설, 해운 분야 중소기업을 상대로 영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보조금 맛들인 브로커들

불법 컨설팅에 뛰어드는 브로커들은 주로 국가보조금 사업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이 많았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국가보조금이 생각보다 쉽게 지급된다는 허점을 노렸다.

지난 2월 부산 북부경찰서에 붙잡힌 국가보조금 브로커 김모씨(47)는 한때 직원 7명 정도를 거느린 소형 건설업체의 대표였다. 그는 ‘고용환경개선 지원금’ 수급 관련 공사를 진행하며 해당 업체들이 손쉽게 지원금을 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씨는 2011년 2월 경남 김해에 작은 사업장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국가보조금 컨설팅에 뛰어들었다. 지원을 받을 만한 업체를 찾아가 “돈을 벌면서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김씨는 공사비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지난해까지 총 5억4000만원의 지원금을 타낸 혐의를 받고 있다.

국가보조금 제도 운영체계를 잘 알고 있는 공무원이 불법 컨설팅에 나서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 2월 고용노동부의 한 공무원이 기업·개인정보 12만건을 빼내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는 영세기업을 상대로 불법 컨설팅을 벌이다 경찰에 적발됐다. 이 공무원이 세운 노무법인은 지난 5년간 정부에서 190억원의 보조금을 받아낼 수 있도록 컨설팅 영업을 했고, 이 가운데 58억원을 수수료로 챙겼다. 검찰과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국가보조금 비리에 연루된 공무원은 19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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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본 M&A까지 등장

불법 컨설팅 업체의 국가보조금 편취 수법도 점점 진화하고 있다. 사업장 내 인원을 부풀리는 등 단순 서류조작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거나 ‘바지사장’을 내세운 노무법인을 설립하기도 한다.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담보자산을 보유한 업체를 인수합병(M&A)하는 등 갈수록 수법이 교묘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대전지방경찰청은 여러 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뒤 IT 제품 등을 서로 거래하는 것처럼 허위로 꾸며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창업지원보조금’을 타낸 1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최근 서울 동부지검도 리조트 등을 소유한 회사를 무자본 M&A 형태로 사들인 뒤 이 회사 소유 자산을 담보로 제공하고 한국농어촌공사로부터 ‘해외농업개발기금’ 72억원을 받아낸 대표 등 3명을 구속했다.

각종 인증을 허위로 발급해 국가보조금을 따내기도 한다. 서울 서부지검은 지난해 9월 친환경 농산물 인증을 허위로 발급해 30억원대의 보조금을 빼낸 브로커와 지자체 공무원들을 적발했다.

○보조금 관리체계 구멍

불법 컨설팅 업체들이 활개치는 이유는 정부와 시장에서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들이 국가보조금과 관련된 일을 꺼리고 있어서다.

우선 노무사, 변호사 등은 정부보조금과 관련된 컨설팅 사업을 잘 수임하지 않는다. 다른 분야에 비해 수수료가 적은 편이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한 노무법인 관계자는 “정부보조금은 수급 이후 문제가 발생하면 환급 조치가 이뤄지는 등 복잡한 문제가 있어 실제 노무사 등 전문가들이 잘 나서지 않는 분야”라며 “이런 상황에서 브로커들이 영세한 중소기업을 파고들어 보조금 지급 및 관리체계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부처 역시 전문인력 부족으로 보조금 부정 수급을 사전에 차단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용환경개선지원금을 받아낸 사업장이 제대로 지원금을 사용했는지 파악하려면 건축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사업장 복지시설 건립에 실제로 계획한 금액만큼 자재를 사용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고용부 관계자는 “우리는 건축 전문가가 아니어서 현장에 실사를 나가도 콘크리트를 어떻게 사용했고, 시설에 문제가 없는지 정확하게 진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실토했다.

최병대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보조금 사용을 체크할 수 있도록 시민단체, 학계 전문가, 공익단체 대표 등이 참여하는 국가보조금 관리감독 위원회 등을 설립하는 것이 국민 혈세의 낭비를 막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호/홍선표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