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돈 넣어 선박 구성부터 바꿔야
정부가 지난 6일 인수합병(M&A) 활성화를 위한 규제개혁 정책을 발표했다. M&A 시장의 큰손인 토종 사모펀드(PEF)의 발목을 잡아왔던 각종 규제를 풀어 경영참여나 투자회수에 숨통을 터준다는 게 골자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사모펀드를 구원투수로 활용한다는 계산이다. 이번 규제 완화로 토종 사모펀드들이 본연의 모험자본 공급자 역할과 기업 구조조정, 더 나아가 적극적인 경영참여까지도 가능하게 됐다.

정부는 원유, 제철원료, 액화가스 등 대량화물의 화주가 구조조정 중인 해운사를 인수할 수 있는 길도 터줬다. 포스코, 현대제철, 남부발전 등이 STX, 팬오션 등 자금난에 시달리는 해운사를 인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내 대형화주는 한국 해운사들의 안정적인 수익원이었다. 그러나 대형화주가 직접 해운사를 인수해 자가운송하는 것은 3자물류업을 키워 세계적 물류전문기업으로 육성한다는 정부 전략에 역행하는 것이다. 국적 해운사인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 글로벌 해운사들은 국내 영업기반을 토대로 글로벌 영업을 도모하기 때문에, 국내 영업기반의 붕괴는 곧 글로벌 경쟁력 약화를 초래해 세계적 3자 물류전문기업의 육성은 불가능해지게 될 것이다.

해운사는 높은 레버리지로 영업 대비 자산 규모가 큰 것이 보통이다. 국내의 대형 사모펀드가 해운사에 투자할 때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으로 분류돼 투자에 걸림돌이 됐으나 이제는 사모펀드의 해운업에 대한 투자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통상 경영권 인수는 구주매매로 이뤄지기 때문에 사모펀드가 해운사 인수에 참여해도 실질적인 자본증가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또 경쟁력 있는 사모펀드라고 해도 해운업 운영경험이 없기 때문에 경영권 인수보다는 2대 주주로 참여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를 위해 사모펀드가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투자에 나선 경우 2년 내 보통주로 의무전환해야 하는 규정을 완화하고 매각차익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을 도입해야 한다. 사모펀드가 2대주주로 참여해 신규자금을 지원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또한 사모펀드가 해운사 전체가 아니라 일부 사업부만을 따로 떼어내 인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해운사들도 신규 선박투자를 위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수익성 있는 사업부문만 따로 사모펀드에 매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내 구조조정 대상 해운사들의 본질적인 어려움은 ‘높은 용선료를 지급하는 장기용선 선박의 다량보유와 고비용·저효율 선박의 다량보유’에 있다. 장기용선 선박은 계약이행 의무로 어쩔 수 없지만, 저비용·고효율 선박 확보를 위해서는 사모펀드를 통한 신규투자 활성화와 이를 유인할 수 있는 세제 혜택 등 정책적 배려가 뒷받침돼야 한다.

얼마 전 위성이 찍은 한반도 야경사진이 공개됐다. 북한 지역이 칠흑처럼 어두워 한국이 마치 섬처럼 보였다. 실제로 한국은 섬이나 마찬가지다. 수출입 화물의 99.8%가 해상운송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 해운은 군대처럼 국가비상 시를 대비해 적극 육성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게 사실이다. 영국도 자국의 상선대를 ‘머천트 네이비(Merchant Navy)’라고 부르지 않는가.

한국 해운사가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아 세계의 바다를 호령하기 위해서는 해운사들이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국가적 배려가 있어야만 한다. 국내 해운사들이 저비용·고효율의 새로운 선박으로 선대구성을 변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이다. 그러면 국내 조선산업을 더불어 활성화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전준수 < 서강대 대외부총장·경영학 joonsoo@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