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엘니뇨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면서 농가와 상품 투자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엘니뇨란 적도 동태평양 해역의 수면 온도가 평소보다 높아지면서 세계적으로 홍수와 가뭄 등을 일으키는 이상기온 현상을 말한다. 엘니뇨가 생기면 전 세계 농작물 생산량이 줄고 식품 가격이 상승한다.

호주 기상청은 11일(현지시간) “지난 몇 주간 적도 태평양 지역의 수면 아래 온도가 상당히 따뜻해졌다”며 “수개월 내 해수면 온도가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호주 기상청은 또 “최근 서부 태평양에 부는 서풍이 엘니뇨가 마지막으로 나타났던 2009년 이후 가장 강력해졌다”고 덧붙였다.

이는 올여름 엘니뇨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진다. 올 들어 주요국 기상 당국이 내놓은 세 번째 엘니뇨 경고다. 지난주 미국 기상청은 올해 엘니뇨 발생 가능성이 50%라고 밝힌 데 이어 일본 기상청도 엘니뇨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상품 투자자와 농가에는 비상이 걸렸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홍수와 가뭄 등 이상기온 현상이 전 세계에 걸쳐 나타나면서 에너지, 식품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1997~1998년엔 극심한 엘니뇨 현상으로 당시 미국에서만 수십억달러 규모의 농산물 피해가 발생했다. 트레이시 앨런 라보뱅크 상품애널리스트는 “농가부터 애널리스트에 이르기까지 모두 긴밀히 시장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농가 피해와 이에 따른 식품 가격 상승은 가난한 국가에 더 큰 타격을 입힌다. 특히 신흥국은 통화 약세로 수입 물가가 오른 상황이어서 엘니뇨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

엘니뇨 발생 우려는 이미 상품 가격에 반영되고 있다. 서부 아프리카에서 주로 생산되는 코코아 가격은 올 들어 현재까지 10% 이상 급등했다. 인도네시와 말레이시아에서 생산되는 팜오일 가격은 9% 올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밀가루, 설탕, 면화, 고무 등도 엘니뇨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품이라고 전했다. 페루 등지에서 잡히는 생선 가격에도 엘니뇨는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하지만 미국 기상 당국은 엘니뇨 현상이 올해 얼마나 심할지, 농산물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미국 기상보호센터의 마이크 할퍼트는 “올여름 엘니뇨가 발생할 것이라고 기정사실화하고 그 영향을 예측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한편 미 국립해양기상청, 호주 국립연방과학원 등 국제 연구팀이 지난 1월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20년마다 생기던 엘니뇨의 발생 주기가 10년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 엘니뇨

페루, 칠레 등 중남미 동쪽의 바닷물 온도가 평상시보다 따뜻해지는 현상. 동남아와 호주에선 극심한 가뭄이, 미국 남부와 중남미 해안 등에선 폭우가 쏟아지는 등 기상 이변이 나타난다. 주로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12월 말 나타나 스페인어로 ‘아기 예수’를 뜻하는 엘니뇨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