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앞지르려면 몇 배 힘들고, 잠시 쉬면 금세 따라잡혀…등산과 꼭 닮은 경영…'아웃도어 정상'향해 오늘도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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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오피스 -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
에베레스트 오른 프로 산악인
등반대 짐 얹고 가는 '야크'처럼 山사람들의 동반자로 뚜벅뚜벅
산악인 사회공헌재단도 출범
없다·안된다·모른다 '세가지 금기'
"낭떠러지를 만날 순 있지만 결국 길이 없는 곳은 없어"
눈앞 실패 연연말라…도전 강조
에베레스트 오른 프로 산악인
등반대 짐 얹고 가는 '야크'처럼 山사람들의 동반자로 뚜벅뚜벅
산악인 사회공헌재단도 출범
없다·안된다·모른다 '세가지 금기'
"낭떠러지를 만날 순 있지만 결국 길이 없는 곳은 없어"
눈앞 실패 연연말라…도전 강조
“이 다운재킷에는 발열 섬유패널과 심박 수 측정 시스템이 들어있습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과 연동해 온도를 5단계로 조절할 수 있어요. 운동량, 칼로리 소모량, 이동 거리도 보여줍니다.”
지난 1월 말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스포츠의류·용품박람회인 이스포(ISPO)의 한 부스. 예순을 넘은 듯한 외모의 한 신사가 알록달록한 아웃도어 옷을 차려입고 유럽 바이어들에게 자체 개발한 신기술을 설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토종 아웃도어 업체인 블랙야크의 강태선 회장(64)이다.
강 회장은 ISPO 기간 내내 부스를 지켰다. 전 세계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들의 각축장에서 블랙야크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서다. 블랙야크는 한국 아웃도어 브랜드 중 유일하게 3년 전부터 이 박람회에 참가하고 있다.
산에 오르며 경영을 배우는 CEO
“한국은 수출로 먹고살아야 하는 숙명을 지닌 나라잖습니까. 아웃도어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한국의 토종 브랜드로 태극기를 휘날리는 게 저의 꿈입니다.”
노스페이스, 코오롱스포츠와 함께 국내 3대 아웃도어 브랜드인 블랙야크를 일궈낸 강 회장은 이 업계의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최고경영자(CEO)다. 제주에서 태어난 그는 스물네 살이던 1973년, 서울 종로5가에 10㎡짜리 등산용품 매장 ‘동진사’를 차렸다. 이곳은 연매출 6700억원(2013년)으로 성장한 블랙야크의 모태다.
강 회장의 사업 역정은 모든 게 산(山)과 맞닿아 있다. 산이 좋아 등산용품 사업을 시작했고, 산 덕분에 큰 성공을 이뤘고, 산에서 인생과 경영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것이다.
“등산과 기업경영은 너무나 닮았지요. 남을 앞지르려 하면 몇 배로 힘들고, 잠시 쉬다 보면 쉽게 따라잡힙니다. 경영도 마찬가지로 한발 한발 체력 안배를 하면서 나아가야 높이 오를 수 있습니다.”
그는 프로 산악인이다. 몽블랑(4807m), 엘부르즈(5642m), 시샤팡마(8027m), 안나프루나(8091m), 초오유(8201m), 칸첸중가(8586m), 에베레스트(8848m) 등을 모두 올랐다. 한국 대표 산악인인 엄홍길, 오은선 씨를 비롯해 후배 산악인을 발굴해 후원해왔다. 지난해엔 등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산악인들의 유가족과 소외계층을 돕기 위해 사회공헌재단을 출범했다.
주말마다 산에 올라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을 다잡는다는 강 회장은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곳이라면 뒷동산이든, 거친 히말라야 산이든 모두 다 명산(名山)”이라고 말했다.
블랙야크라는 상표도 강 회장이 엄홍길 씨와 함께 고산을 오르다 우연히 맞닥뜨린 야생 야크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야크(yak)는 등반대의 짐을 얹고 가는 솟과 동물로, 산악인들에겐 동반자와 같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동서양 잇는 블랙야크 실크로드 꿈꾸다
블랙야크 직원들 사이에선 업무 중 쓰지 말아야 할 세 가지 ‘금기어’가 있다. “없습니다”와 “안됩니다” 그리고 “모르겠습니다”다. 강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산 사나이’답게 저돌적이고 공격적이다. 중간에 높은 암벽이나 낭떠러지를 만날 순 있지만 결국 가지 못할 곳은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유럽에 앞서 1998년 중국 시장에 일찌감치 진출해 해외 사업의 터를 닦기 시작한 것도 이런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강 회장은 “당시 중국은 등산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어 다른 기업 같으면 진작 철수했을 불모지였다”고 회상했다. “이젠 단단히 기반을 구축했다”는 그의 말처럼 블랙야크는 지난해 중국 내 300개 매장에서 6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궁극적으론 한국에서 시작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블랙야크 실크로드’를 만든다는 게 강 회장의 목표다. 아들 준석씨도 5년 전 회사에 입사해 글로벌사업본부 차장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 힘을 보태고 있다.
단기적인 성패에 연연하지 않고 도전적으로 사업을 키우는 강 회장의 스타일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파란만장(?)했던 사업 경험과 무관치 않다. ‘동진사’ ‘동진산악’ ‘동진레저’ ‘블랙야크’ 등으로 변모해 온 이 회사는 사회·경제 상황에 따라 부침이 있었다.
1977년 고상돈 대원이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뒤 ‘등산 열풍’이 불면서 당시 동진산악은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비상계엄이 내려진 이후 등산 인구가 자취를 감추면서 직격탄을 맞았고 한동안 말 못할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당일치기 무박 산행이 활성화된 1980년대 중반부터는 ‘돈 세느라 밤잠을 못 잘 정도로’ 장사가 다시 잘됐다. 이때의 호황도 오래가지 않았다. 1992년 산에서 야영·취사가 금지되면서 등산장비 수요가 자취를 감췄다. 반면 모두가 힘들었던 1997년 외환위기는 그에겐 기회였다. 직장에서 정리해고된 가장들이 산으로 몰리면서 등산용품 판매가 폭증하는 ‘씁쓸한 호황’을 누렸다.
“아직은 배가 고프다”
2000년대 들어 아웃도어 시장의 급팽창과 함께 블랙야크는 해마다 20~40%씩 성장했다. 하지만 강 회장은 거스 히딩크 전 축구대표팀 감독의 말을 인용해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I’m still hungry)”고 말한다.
“글로벌 명품 아웃도어 브랜드로서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으려면 갈 길이 멉니다. 저는 봉급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어요. 회사를 더 키울 때입니다.”
블랙야크 최대주주인 강 회장은 회사 설립 후 한 번도 배당을 받지 않았다. 2015년 ‘글로벌 톱5’ 아웃도어 브랜드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아직은 버는 돈을 100% 재투자해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에서다. 블랙야크는 최근 신규 아웃도어 브랜드 육성에도 열심이다.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인수 작업이 막바지 단계에 와 있고, 스위스 고급 스키복 ‘마운틴포스’의 국내 판권도 확보했다. 사업을 확장하지만 강 회장은 기존 사업과 무관한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CEO가 한눈팔고 다른 생각하면 직원들이 먼저 압니다. 반대로 내가 회사를 위해 전력을 다하면 그것도 알지요. 진짜 경영자는 길을 가리키며 구성원들과 함께 가야 합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지난 1월 말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스포츠의류·용품박람회인 이스포(ISPO)의 한 부스. 예순을 넘은 듯한 외모의 한 신사가 알록달록한 아웃도어 옷을 차려입고 유럽 바이어들에게 자체 개발한 신기술을 설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토종 아웃도어 업체인 블랙야크의 강태선 회장(64)이다.
강 회장은 ISPO 기간 내내 부스를 지켰다. 전 세계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들의 각축장에서 블랙야크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서다. 블랙야크는 한국 아웃도어 브랜드 중 유일하게 3년 전부터 이 박람회에 참가하고 있다.
산에 오르며 경영을 배우는 CEO
“한국은 수출로 먹고살아야 하는 숙명을 지닌 나라잖습니까. 아웃도어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한국의 토종 브랜드로 태극기를 휘날리는 게 저의 꿈입니다.”
노스페이스, 코오롱스포츠와 함께 국내 3대 아웃도어 브랜드인 블랙야크를 일궈낸 강 회장은 이 업계의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최고경영자(CEO)다. 제주에서 태어난 그는 스물네 살이던 1973년, 서울 종로5가에 10㎡짜리 등산용품 매장 ‘동진사’를 차렸다. 이곳은 연매출 6700억원(2013년)으로 성장한 블랙야크의 모태다.
강 회장의 사업 역정은 모든 게 산(山)과 맞닿아 있다. 산이 좋아 등산용품 사업을 시작했고, 산 덕분에 큰 성공을 이뤘고, 산에서 인생과 경영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것이다.
“등산과 기업경영은 너무나 닮았지요. 남을 앞지르려 하면 몇 배로 힘들고, 잠시 쉬다 보면 쉽게 따라잡힙니다. 경영도 마찬가지로 한발 한발 체력 안배를 하면서 나아가야 높이 오를 수 있습니다.”
그는 프로 산악인이다. 몽블랑(4807m), 엘부르즈(5642m), 시샤팡마(8027m), 안나프루나(8091m), 초오유(8201m), 칸첸중가(8586m), 에베레스트(8848m) 등을 모두 올랐다. 한국 대표 산악인인 엄홍길, 오은선 씨를 비롯해 후배 산악인을 발굴해 후원해왔다. 지난해엔 등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산악인들의 유가족과 소외계층을 돕기 위해 사회공헌재단을 출범했다.
주말마다 산에 올라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을 다잡는다는 강 회장은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곳이라면 뒷동산이든, 거친 히말라야 산이든 모두 다 명산(名山)”이라고 말했다.
블랙야크라는 상표도 강 회장이 엄홍길 씨와 함께 고산을 오르다 우연히 맞닥뜨린 야생 야크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야크(yak)는 등반대의 짐을 얹고 가는 솟과 동물로, 산악인들에겐 동반자와 같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동서양 잇는 블랙야크 실크로드 꿈꾸다
블랙야크 직원들 사이에선 업무 중 쓰지 말아야 할 세 가지 ‘금기어’가 있다. “없습니다”와 “안됩니다” 그리고 “모르겠습니다”다. 강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산 사나이’답게 저돌적이고 공격적이다. 중간에 높은 암벽이나 낭떠러지를 만날 순 있지만 결국 가지 못할 곳은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유럽에 앞서 1998년 중국 시장에 일찌감치 진출해 해외 사업의 터를 닦기 시작한 것도 이런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강 회장은 “당시 중국은 등산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어 다른 기업 같으면 진작 철수했을 불모지였다”고 회상했다. “이젠 단단히 기반을 구축했다”는 그의 말처럼 블랙야크는 지난해 중국 내 300개 매장에서 6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궁극적으론 한국에서 시작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블랙야크 실크로드’를 만든다는 게 강 회장의 목표다. 아들 준석씨도 5년 전 회사에 입사해 글로벌사업본부 차장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 힘을 보태고 있다.
단기적인 성패에 연연하지 않고 도전적으로 사업을 키우는 강 회장의 스타일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파란만장(?)했던 사업 경험과 무관치 않다. ‘동진사’ ‘동진산악’ ‘동진레저’ ‘블랙야크’ 등으로 변모해 온 이 회사는 사회·경제 상황에 따라 부침이 있었다.
1977년 고상돈 대원이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뒤 ‘등산 열풍’이 불면서 당시 동진산악은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비상계엄이 내려진 이후 등산 인구가 자취를 감추면서 직격탄을 맞았고 한동안 말 못할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당일치기 무박 산행이 활성화된 1980년대 중반부터는 ‘돈 세느라 밤잠을 못 잘 정도로’ 장사가 다시 잘됐다. 이때의 호황도 오래가지 않았다. 1992년 산에서 야영·취사가 금지되면서 등산장비 수요가 자취를 감췄다. 반면 모두가 힘들었던 1997년 외환위기는 그에겐 기회였다. 직장에서 정리해고된 가장들이 산으로 몰리면서 등산용품 판매가 폭증하는 ‘씁쓸한 호황’을 누렸다.
“아직은 배가 고프다”
2000년대 들어 아웃도어 시장의 급팽창과 함께 블랙야크는 해마다 20~40%씩 성장했다. 하지만 강 회장은 거스 히딩크 전 축구대표팀 감독의 말을 인용해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I’m still hungry)”고 말한다.
“글로벌 명품 아웃도어 브랜드로서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으려면 갈 길이 멉니다. 저는 봉급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어요. 회사를 더 키울 때입니다.”
블랙야크 최대주주인 강 회장은 회사 설립 후 한 번도 배당을 받지 않았다. 2015년 ‘글로벌 톱5’ 아웃도어 브랜드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아직은 버는 돈을 100% 재투자해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에서다. 블랙야크는 최근 신규 아웃도어 브랜드 육성에도 열심이다.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인수 작업이 막바지 단계에 와 있고, 스위스 고급 스키복 ‘마운틴포스’의 국내 판권도 확보했다. 사업을 확장하지만 강 회장은 기존 사업과 무관한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CEO가 한눈팔고 다른 생각하면 직원들이 먼저 압니다. 반대로 내가 회사를 위해 전력을 다하면 그것도 알지요. 진짜 경영자는 길을 가리키며 구성원들과 함께 가야 합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