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의 첫 선택은 블록버스터 발레다
“한국 감기 독하네요. 그래도 많이 좋아졌어요.”

수화기 너머 들리는 강수진 국립발레단장(47·사진)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에너지가 넘쳤다. 취임 후 첫 공연을 앞둔 그를 6일 전화통화로 만났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무용수였던 그는 지난달 3일 국립발레단 제7대 단장 겸 예술감독으로 취임해 바쁜 한 달을 보냈다.

무용수와 단장, 어떤 일이 더 힘든지 물었더니 ‘강수진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발레 무용수든 예술감독이든 상관없이 가장 중요한 건 하루하루 부딪히며 헤쳐나가는 거예요. 물론 한 번도 행정 일을 해보지 않아 몸은 피곤하죠. 그런데 보람이 피곤을 이겼어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발레 ‘라 바야데르’.
발레 ‘라 바야데르’.
강수진호의 첫 서울 공연은 오는 13~1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서 펼쳐진다. 고대 인도 힌두사원을 배경으로 한 ‘라 바야데르’다. 프랑스어로 인도의 무희를 뜻하는 이 작품은 무희와 전사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무용수만 120여명이 출연하고, 의상이 200여벌 나오는 대형 발레다.

취임 후 첫 공연, 부담은 없을까. “주변에서 기대가 크다는 거 알고 있지만, 부담은 없어요. 단원들이 열심히 준비한 만큼 무대 위에서 제 기량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즐겼으면 좋겠어요.”

94명의 단원들은 강 단장의 가르침을 스펀지 같이 빨아들였다. “한 달, 짧은 시간이죠. 그런데 지난 부산공연에서 보니까 정말 많이 발전한 게 눈에 보였어요. 제가 강조하는 건 하나예요. ‘살아있는 무용을 하라.’ 테크닉만 뛰어난 무용은 예술이 아닙니다. 필링이 깃든 몸짓을 해야죠. 짧은 시간 안에 단원들이 달라져서 보람을 느꼈어요. 아이들(단원들)도 그럴 거라고 믿어요.”

이번 공연에는 강 단장이 인맥을 동원해 모신 캐나다 겔프심포니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 주디스 얀이 지휘를 맡는다. 그는 “연락을 드렸더니 제 공연을 본 적이 있다고 하면서 선뜻 한국에 오겠다고 하시더라고요. 해외 유명 지휘자들은 몇 년치 스케줄이 다 짜여 있어서 갑자기 연락하면 모시기 힘들어요. 국립발레단이 여성 지휘자와 함께 공연하는 건 처음이에요.”

그는 독일에서도 그랬듯이 극장과 집을 오가는 단순한 생활을 한다. “여가생활 없어요. 한국 와서 달라진 점은 아무 때나 김치를 먹을 수 있다는 점 정도를 꼽을까요. 독일에선 김치를 먹고 싶어도 냄새 때문에 못 먹었거든요. 요즘은 샌드위치 먹을 때도 김치 먹어요. 시간 없어서 집에서 밥은 못 해먹고 가끔 맛집에 가죠.”

강 단장은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안정적인 기반이 닦일 때까지 5년은 걸릴 거예요. 국립발레단에 잠재력이 없다면 제가 시작도 안했을 겁니다. 자기만의 개성을 발휘하면서도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그런 발레단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